한 여름 복더위가 한창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캉스 휴가를 얻어 도시를 탈출하는 바람에 도심은 한가한 모습이지만 피서지는 온통 만원이다. 선풍기와 에어컨으로 더위를 쫓는 것이 모자라 말 그대로 피서(避署)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선인들은 더위를 피하지 않고 죽부인과 삼베옷 등으로 여름을 맞았다. 죽부인은 대나무를 매끈하게 다듬어 얼기설기 엮어 만든 원통형으로,사람의 키만큼 길어 안고 자면 시원한 감촉을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침구였다. 아버지가 안고 자는 죽부인은 어머니에 준하는 대접을 받을 정도로 귀히 여겨 장례식 때 같이 묻을 정도였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죽부인을 더치 와이프(Dutch wife)라 하는데 네덜란드 사람들이 이를 소개해서 '더치'란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 삼베옷과 모시옷은 더할 나위없는 여름의복이었다. 빳빳하게 풀먹여 다림질한 옷은 정갈함과 단아함이 돋보이고 까슬까슬한 느낌이 그만이었다. 대자리를 펴고 삼베옷을 걸친 채 죽부인을 끼고 참숯베개에 고개를 누이면 어느새 여름은 물러서 있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졸졸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이나,뜨거운 모래 속에 온 몸을 묻는 모래찜질은 이열치열(以熱治熱)의 대표적인 방법이었다. 경국지색 양귀비가 사용한 쇠구슬(玉魚)도 피서용품이었다고 전해지는데 입안에서 쇠구슬을 빨면서 그 냉기로 더위를 식혔다고 한다. 연산군은 뱀을 넣는 대나무 뱀틀을 만들어 그 위에 앉아 대나무의 한기와 뱀의 냉기를 동시에 느꼈다는 기록도 있다. 요즘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우리의 전통 제품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는 소식이다. 모시 삼베 마 대나무제품들이 다양하게 출시되는데다 항균기능 등의 의학적인 장점도 강조돼 예년에 없이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잡는다고 한다. 이들 여름나기 제품들은 중국 등지의 수입품이 많은 모양인데 한산모시 안동삼베 담양대나무 등의 품질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제품들이 지방특산품으로 개발된다면 가격차별화로 부가가치를 높이고 삼복더위도 한층 운치있게 보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