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세기 이상 세계경제의 리더 역할을 해왔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경제지표로 생산성(노동시간당 총생산)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널리 사용돼왔다. 하지만 유럽의 생산성이 미국을 곧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역사적으로 유럽의 생산성은 지난 19세기 후반 이후 1950년대까지 미국에 비해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후 50년간 유럽의 생산성 성장률은 미국보다 빠르게 높아져 이제 그 격차가 7% 미만으로 좁혀졌다. 미국 컨퍼런스보드에 따르면 독일의 생산성은 미국보다 오히려 1%포인트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벨기에 프랑스 아일랜드 네덜란드 등도 미국보다 생산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차대전 이후 전후 복구를 위한 인프라건설과 전력사용 확대,그리고 자동차 생산의 급증으로 유럽의 생산성이 급속도로 향상된 결과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의 1인당 GDP는 미국과의 갭이 계속 벌어져 현재는 미국의 77%에 불과하다. 이런 격차가 생기는 것은 유럽의 높은 실업률도 작용하지만 유럽인들이 미국인들보다 적게 일하고 여가를 더 즐기기 때문이다. 이런 노동시간 차이를 감안하면 1인당 GDP 격차는 23%가 아니라 18% 정도로 조정돼야 한다. 또 유럽의 1인당 GDP가 미국에 크게 뒤진다고 해서 미국보다 못산다고 말할 수는 없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버트 고든 경제학 교수는 '경제성장의 두 세기:미국을 뒤쫓는 유럽'이란 논문을 통해 "1인당 GDP를 감안하면 유럽이 미국의 4분의 3 수준에 불과하지만 여가를 더 많이 즐기고 생활조건이 유리한 점 등을 고려하면 유럽의 생활수준은 미국과 대등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미국 GDP에는 생활수준 향상과는 무관한 불필요한 요소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미국의 날씨는 유럽에 비해 겨울 여름 등 계절별로 기온차가 매우 심하다. 따라서 미국은 겨울에 히터를 많이 사용하는 등 난방비용이 많이 들며 여름에는 에어컨을 더 많이 사용해 전력을 많이 소비한다. 둘째,미국은 유럽보다 범죄 발생률이 훨씬 높다. 미국은 이에 대처하기 위한 개인적 사회적 안전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2백만명에 달하는 범죄자들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셋째,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인구가 대도시 주변이나 교외에 살고 있으며,이들은 출퇴근시 전철 버스와 같은 대중 교통보다는 자가용에 의존한다. 때문에 러시아워에 교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도로를 보수 신설하는 등 관련비용이 많이 든다. 반면 유럽은 기차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망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 교통관련 신규투자가 거의 없는 편이다. 이에 따른 연료소비도 미국에 비해 훨씬 적다. 넷째,유럽인들은 집 앞에 있는 가게에서 2백여 종류의 치즈를 살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생활용품을 구입한다. 반면 미국에서는 이들 제품을 사려면 승용차를 몰고 수십 마일 떨어진 대형 슈퍼마켓에 가야 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 역시 GDP에 포함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미국의 GDP 증가가 주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에 반드시 기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1인당 GDP로 미국과 유럽의 생활수준을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며,유럽인들의 생활수준은 미국에 결코 뒤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정리=권순철 기자 ikee@hankyung.com -------------------------------------------------------------- ◇이 글은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2월10일자)에 실린 'Chasing Leader'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