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불확실성의 늪에 빠져 있다. 세계경제는 회복될지,유가는 얼마나 더 오르고 환율은 어떻게 움직일지,또 주식값과 금값은? 온통 불확실한 것 투성이다. 임박한 미국-이라크전쟁 탓이다. 이럴 때를 위해 공자가 남긴 말이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우리에게는 '1991년 걸프전'이라는 분명한 역사가 있다. 무대(이라크)와 인물(아들 부시와 후세인),시기(연초)가 너무도 흡사하다. 그러니 파장과 결말도 거의 같지 않을까.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로 사족을 달 필요도 없을 것 같다. 91년 1월17일 목요일 오전 2시38분(중동시간) 미군을 주축으로 한 다국적군의 이라크공습이 개시됐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90년 8월2일) 후 미국이 전쟁준비를 한 지 약 6개월 만이었다. 우려했던 대로 유가는 폭등하고 주가와 달러가치는 폭락했을까. 당시 기록들을 들춰봤다. 그러나 뜻밖이었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31달러에서 22달러로 대폭락하고,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3%(70포인트) 급등했다. 서울증시도 5% 가까이 솟구쳤다. 온스당 4백달러이던 국제금값은 3백70달러선으로 무너지고,달러가치는 달러당 1백36엔에서 1백34엔으로 떨어졌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은 달러가치 하락뿐이었다. 유가 금값 주가는 전쟁이 터지자 모두 거꾸로 움직였다. 특히 유가는 대(對)이라크 공격이 시작되면 배럴당 40달러를 지나 60달러까지 폭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세계경제를 짓눌렀던 불확실성과 불안은 전쟁과 함께 사라졌다. 한달여의 공습후 2월24일 다국적군의 전면적인 지상공격이 시작됐다. 이때도 유가는 배럴당 17달러,달러는 1백32엔에서 안정돼 있었다. 지상공격 4일 만인 2월28일 오전 8시 걸프전은 다국적군의 승리로 42일간의 단기전으로 끝났다. 그날 유가는 배럴당 18달러,달러는 1백31엔이었다. 우려했던 금융시장의 혼란은 전혀 없었다. 제2의 걸프전이 저만치에 와있다. 하지만 불안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온고'에 의한 '지신'의 결론이다. lee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