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년의 경제위기 이후,민간경제에 대한 정부 개입은 계속 줄여 나가야 한다는 커다란 흐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역할에 대한 경제이론에 근거한 설득력 있는 정립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산업정책에 대해서는 선별적 개입과 기능적 개입의 대비가 있어왔다. 성장 단계의 산업 정책이 특정 산업 부문을 선별하여 집중 지원하는 선별적 산업정책이었다면,이제는 여러 산업이나 부문이 모두 필요로 하는 기능이나 시설 등에 정부의 자원을 투입하는 기능적 개입이어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 사실 정부도 이런 방향전환을 천명한 바 있으나 여전히 선별적 개입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기능적 개입 정책이란 것이 대개 가시적 효과가 당장 나오지 않거나 업적이라고 내세울 만한 '표'가 잘 나지 않는 그런 성격의 것이 많기 때문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의 입장은 이를 무조적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선별 개입 위주에서 기능적 개입 중심으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선별적 개입이 할 역할도 남아 있다고 본다. 즉,요지는 선별 개입을 하더라도 이제는 과거와 달리 제대로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별개입에 대한 경계론은 사전에 어떤 산업이 어떤 식으로 전개 발전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부가 섣불리 자원을 특정방향으로 투입하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식의 정부주도 실패 사례는 상당히 많다. 최근에는 너무 앞서간 정부 주도의 B2B 육성 등이 예가 될 것이다. 아직은 우리의 산업 수준이 여러 부문에서 선진국과의 격차가 존재하고 따라서 추격의 문제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산업정책은 여전히 필요하다. 전반적인 시장원리의 득세에 따라 선진국에서 명시적으로 산업정책을 한다고 표방하는 나라는 드물지만,대부분의 나라들이 산업정책의 실질적 내용은 지속 운용하고 있다는 현실은 한국도 섣불리 이를 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자는 한국의 산업기술 정책이 '산업별 기술체제'의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여 실시되어야 한다고 본다. 산업별 기술체제란,일찍이 기술혁신을 강조한 슘페터의 통찰력을 계승한 신슘페터학파의 경제학자들이 제기한 개념이다. 이는 각 산업 부문들은,기술혁신의 빈도나 기술적 발전 기회의 크기,관련 지식기반의 특성,혁신 결과의 배타적 상업화 가능성 등 여러 면에서 다 차이가 나며 이런 기술체제의 차이는 곧 기술혁신 활동의 내용과 성격상의 차이로 연결된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정부의 역할과 관련지어 생각하면 기술체제의 특성에 따라 산업정책의 내용과 수단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바로 나온다. 가령 기술적 불확실성이 커서 향후 발전 경로의 가변성이 큰 산업일수록 정부의 직접적 개입은 위험성이 크다고 할 것이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일본 정부의 이동전화 표준 정책이다. 한국의 CDMA 개발은 사실 대단히 위험한 시도였으며 이는 통신산업의 기술 발전의 불가측성을 고려해 볼 때 상당히 예외적 사례라고 보아야 한다. 아직도 불안한 동기식 CDMA 기술의 장래는 한국의 기술 도박 성공의 불완전성을 의미한다. 단,이런 산업의 경우 기술적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연구개발 동향에 대한 정보 파악과 보급 등은 출연연구기관 등을 중심으로 오히려 활발히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반면에 기술적 불확실성이 작은 부문의 경우 정부개입은 위험성이 덜하다고 할 수 있으나 이도 추가적 요소들을 고려해서 전개되어야 한다. 즉,자동차 산업의 경우와 같이 기술 발전 경로의 가변성도 작으면서 기술발전의 누적성도 작고 필요한 자본규모도 작은 부문의 경우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암묵적 시장보호나 인력양성,지재권 보호 등에서 일부일 것이다. 반면에 고집적 메모리 같이 기술의 발달 경로가 16메가,64메가,2백56메가 이런 식으로 사전에 예측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필요자본 규모가 급속히 거대해지는 경우,정부가 민간과 공동으로 직접적인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것 등이 정당화 될 수 있다. kenneth@snu.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