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자랑 대회에서 노래를 잘 못하는 사람 뒤에 차례가 오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웬만큼 불러도 잘한다는 인상을 남길 수가 있다. 하지만 가창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대상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발사가 실수를 하면 새로운 머리 스타일이 생기고,재단사가 실수를 하면 새로운 패션을 만든다고 한다. 말단 사원이 실수를 하면 그것은 그의 실수일 뿐이다. 정권과 대통령이 실수를 하면 어떻게 되는가. 국민만 골탕을 먹는다. 경제는 늪에서 허우적거리는데 정치는 한심한 작태를 연출한다. 한시가 급한 경제 및 민생 관련법이 6월 임시국회에서 표류되고 말았다. 언론사 세무조사와 경제관련 입법이 왜 함께 묶여 뒤범벅이 돼야 하는가. IMF 한파 속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권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행운이었다. 노래 부르는 순서가 괜찮았다는 의미에서다. 그런데도 외환위기를 빨리 극복했다는 걸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IMF 한파는 오랫동안 한국경제에 쌓여왔던 구조적 폐단 때문에 불어닥친 것이었기에 단순히 외환보유액을 많이 쌓는 것만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현 정부가 구조조정과 개혁을 위해 애쓴 흔적은 있지만,그 일을 너무 안이하게 접근했던 것 같다. 구조조정은 언제까지 시한을 정해 놓고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개혁은 몇가지 조치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비록 잘못된 것이라 해도 관행으로 굳어진 것이 많다. 이런 것까지 바로잡으려면 10년이 더 걸리는 것도 있지 않겠는가. 생산기반은 약한데 베푸는 일을 서둘러 박수를 빨리 받고자 하면 일은 꼬인다. 인기를 외면할 정권과 정치인이 있으랴만,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청중을 뒤로하고 있다는 말뜻을 되새겨 보았으면 좋겠다. 정치판은 가관이다. 싸움의 수준이 너무 낮고,오가는 말이 품위를 잃고 있다. 말꼬리 잡아 비틀기다. 국민을 어떻게 보는지 정치판의 지적 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선이 다가오면 정쟁의 격화는 불을 보듯 뻔하고,그럴 경우 김영삼 정권 말기에 겪은 경제적 혼란이 다시 오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것인가. 우리사회 일각에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일고 있다.고통스러운 경험도 시간이 흐르면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오는 것인가. 유신시대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면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경제다.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은 경제를 열심히 챙기는 것으로 정치적 결점을 보상받고자 했는지 모른다. 국민의 직접선거로 등장한 6공의 노태우 정권은 정치적으로 떳떳하다고 생각해서인지 경제를 챙기는데 소홀했다. 김영삼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신경제 100일 계획'을 발표하고 '신경제 5개년 계획'을 새로 짰다. 당시 '7차 5개년 계획(1992∼96)'이 시행 중이었는데도 이걸 어떻게 하겠다는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그러니 한 정부안에서 '5개년 계획'이 두 개가 시행되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긴 것이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열어 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며 OECD 가입을 서둘렀다. 기초 다지기를 소홀히 한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경제는 거덜났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떳떳한 정권이라 해도 경제실적이 나쁘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시대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각 정권의 경제실적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민주화 주역'이라는 자만이 경제 챙기는 일을 소홀히 하게 했다면,또한 모든 조직이 대통령 한사람만 쳐다보고 있다면,이는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행정 각부를 비롯한 모든 조직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정권이 바뀐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개혁은 고사하고 시급한 현안도 제대로 처리할 수 없지 않겠는가. 여야의 시각은 같을 수 없겠지만 경제 살리는 일에는 힘을 모아야 한다. 국민만 골탕 먹는 일을 하면서 정권을 지키겠다고 또 빼앗겠다고 한다. 정당은 선거를 치르기 위한 모호한 동맹에 불과한 조직인가. 노래 부를 순서가 중요한 게 아니다. 가창력 있는 가수를 국민은 안다. 국민은 침묵하고 있는 것 같아도 정치인들보다 현명하다. yoodk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