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과 국회법, 정당법 등 이른바 정치개혁 관련 법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불만이 거세게 표출되고 있는 양상이다.

의원 정수의 축소, 비례대표 후보의 여성 할당, 후보의 전과열람, 병역 및
납세기록 공개 등 제법 진전된 내용이 포함되긴 했지만 정치개혁을 바라던
국민의 기대에 비해 미흡하기 짝이 없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정당의 체제와 후보공천 등 운영의 민주화, 정치자금의 투명화 등은 물론
국민의 참정권 확대 등을 철저히 외면했다는 지적도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시민단체 대표들이 즉각 시한부 농성을 시작하는 한편 선거법의
재개정을 요구하는 규탄대회를 갖고 장회집회를 열어 낙선운동을 강행하며
불복종 운동을 펴겠다고 분노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개정된 법을 "정치권의 이기주의와 담합의 산물"이라고 평가한 것에도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에 보장된 참정권을 확보하기 위해" 불복종 운동에 나서겠다는
데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법치주의를 뿌리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비록 그 내용이 불만족스럽더라
도 합법적 절차를 거친 법을 의도적으로 어기게 되면 그것이 또 다른 혼란과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총선까지 두달 밖에 남지 않은 지금 또다시 법을 고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선 선관위와 검찰 등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국가기관과 시민단체의 충돌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동안 두 기관은 실정법에 어긋나는 시민단체의 불법 행동에 손을 놓다시피
했지만 법이 개정되자 불복종 운동을 법대로 다스리겠다는 입장을 명백히
했다.

어느 쪽이 물러서지 않으면 충돌은 불가피하고 그것이 또 어떤 불상사와
파장을 일으킬지는 예상조차 하기 어렵다.

더구나 순수한 시민단체에 편승해 정체도 알 수 없는 사이비 단체들이
불순한 목적으로 덩달아 날뛰는 일이 없으리라고 하기도 어렵다.

자칫 공명선거는 아예 기대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시민단체들이 낙천자 명단을 발표하자 곳곳에서 사전 불법 선거운동의
조짐이 커지고 있다거나, 또는 지역감정이 오히려 더 심화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시민단체들이 결코 바라지 않는 부작용들이다.

각종 이익단체의 선거운동까지 허용됨으로써 이번 총선이 유달리 혼탁해
지리라는 우려가 큰 것 또한 사실이다.

시민단체의 순수성과 의욕은 훌륭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복잡한 세상사를
일거에 해결할 수 없다.

불만족스럽지만 일단 정해진 법은 지켜야 한다.

지금까지 거둔 성과도 결코 작지 않다.

이를 바탕으로 법을 지키는 시민운동을 펼치기 바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