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맞이 준비로 온 세상이 들떴던 지난 연말 자민 자유 공명당 등
연립여당의 정책담당 고위관계자들이 도쿄시내 한 호텔에 조용히 모였다.

파산금융업체의 예금을 전액 보호해주는 특례조치 즉 페이오프의 해제문제를
최종협의하는 자리였다.

사카구치 공명당 정책심의회장은 이자리에서 "6개월후에 재협의하고 그때도
실시가 어려우면 다시 6개월 연기하자"고 제의했다.

가메이 자민당정조회장은 "연기한다면 1년이다"고 응수했다.

후지이 자유당간사가 "가메이 씨가 그렇게 얘기한다면..."이라며 자민측에
동조했다.

사카구치 회장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다수결의 원리"를 받아들였다.

이로써 정부가 지난 95년에 2001년3월로 결정한 페이오프해제일이 정치주도
로 1년간 연장됐다.

자민당측은 중소영세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페이오프의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예금이 이동하면 중소기업이 큰 타격이 받는다"는 신용조합 신용금고업계의
논리를 수용했다.

금융혼란을 막아보자는 임시처방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이 금융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한마디로
무리다.

문제 금융업체에 대한 처리가 지연되면서 부실채권이 오히려 더 늘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실금융기관을 연명시키면 기업에 대한 융자가 위축될 수 있고 일본금융
기관들의 국제적 신용도도 떨어질수 있다.

외국의 신용평가기관들은 이미 페이오프 연기에 맞춰 일본금융기관의 등급을
하향조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페이오프해제와 관련한 여당측의 대응에는 문제가 있다.

2001년3월까지 신용조합의 검사 처리를 완료하기가 어렵다는게 여당측의
논리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그동안 신용조합의 경영건전화등 대책마련을 외면해왔다.

따라서 내년의 총선거를 의식한 "상공족"의원 등 정치권의 야합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경제계에서는 "페이오프해제가 연기됐기 때문에 위기의식이 약화되면서
금융산업재편도 지연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일본금융시스템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페이오프연기에 따른 대규모 공적자금지원으로 국민부담 또한 높아질
전망이다.

일본의 금융시스템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시스템의 취약한 부분을 정책적으로 강화시키고 문제부문을 과감하게
도려내야 한다.

그러나 표를 의식한 거대연립여당의 정치적 야합으로 금융개혁은 또다시
물거품이 돼가고 있다.

< 도쿄=김경식 특파원 kimks@dc4.so-net.ne.jp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