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은행 경영권이 마침내 미국계 투자그룹인 뉴브리지 컨소시엄으로
넘어갔다.

외국계 자본이 국내금융 시장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점포수
3백36개, 자산규모 32조원이 넘는 메이저 은행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부분 경영자들이 외국인으로 채워지는 새로운 제일은행에 적지 않은
기대도 갖게 된다.

관치 금융의 폐해나 낡은 대출관행이 이로써 근본적으로 개혁될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돌아보면 한보 기아 대우로 이어진 초대형 사건들에 빠지지 않고 연루되면서
우리경제 전체를 동반 함몰시켜 갔던게 지금까지의 제일은행이었다.

지난 97년 봄 한보 부도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외환위기로까지 확산된데는
한보의 주거래은행이었던 제일은행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할 것이고
외환위기의 결정타였던 해외 크레디트 축소 역시 제일은행에서 촉발됐던
일이다.

한보에 뒤이어 우리경제에 큰충격을 주었던 기아그룹 역시 제일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만신창이였던 바로 그 제일은행이 외환위기가 발생한지 2년만에
미국계 자본에 인수되면서 새로운 체제를 갖추게된 것이다.

때마침 경제도 본격적인 회복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만큼 이를 계기로 지난
시절의 잘못된 금융관행들이 이제는 모두 바로 잡히기를 기원하게 된다.

물론 우려할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제일은행이 갖고 있던 대우부실은 성업공사에 떠넘기는 것으로 해법을
찾았다 하겠지만 크고 작은 다른 거래 기업들이 어떤 형태건 혼란을 겪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소매영업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새 경영진의 첫마디였지만 그렇다면
도매금융 분야는 아예 포기해도 좋은 것인지 또 그렇게 될 때 기존의 국내
거래기업들은 과연 필요한 자본을 제때에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을지도 적지
않은 걱정거리다.

만에 하나 제일은행과 뉴브리지를 통해 거래 기업들의 영업 비밀이 해외
경쟁자들에게 흘러가는 일이라도 발생한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 측면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뉴브리지의 제일은행
인수를 기꺼이 환영하는 것은 이를 통해 낡은 금융 관행이 깨지고 선진국형의
새로운 질서와 관행이 정착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제일은행과 경쟁해야 하는 다른 국내은행들은 더이상 정부의 보호와 특혜를
요구할 수 없을 것이고 씨티등 외국계 은행들 역시 그동안 누려왔던 우월적
지위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음을 인식해야 하겠다.

정부의 감독체계 정비 등은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