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이후 1천만명째 외국 방문객이 한국에 온 것은 1982년이었다.

거의 30년이 걸렸는데,이는 관광객뿐만 아니라 공무며 사업차 들른 사람들
까지 포함해서다.

이에 비해 미국의 이 회사는 순수 관광객으로만 1천만 명째 손님을 창업
15년 만에 맞이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은 관광수입 30억달러를 올리는데 35년이 걸렸다.

그것도 86년 15억달러 수준이던 것을 88 올림픽 때 혼신의 힘으로 끌어올려
2년만에 배로 늘린 덕분이었다.

이에 비해 이 회사는 첫 유람선 구입비 5백만달러를 몽땅 은행 빚으로
조달, 사업을 시작한 데다 홍보비 등 모든 경비를 다 자체 부담하고도 25년
만에 30억달러 매출을 이룩했다.

또한 30억달러에서 6억달러 추가하는데 한국이 6년 걸린 반면 이 회사는
단 1년 만에 이뤄냈다.

바로 카니발(Carnival Corporation)이다.

물론 일개 민간기업의 내수 위주 관광사업을 일국의 대외 관광사업과 맞대
놓고 비교함은 무리다.

하지만 무명의 신생국 한국이나,시골 동네 플로리다에서 화물선을 개조해
만든 엉성한 유람선으로 당시 백만장자들이나 즐기던 유람선 관광사업에
뛰어든 카니발이나 손님 끌기 힘들었음은 마찬가지다.

오늘날 연간 4백여만명의 손님을 맞는 것도 비슷하다.

다만 카니발은 20년간 연평균 24.5%로, 한국은 15.6%로 성장해온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6개 사업부 가운데서도 전체 매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주력사업인 카니발
크루즈 라인은 1972년 테드 애리슨이 세운 회사다.

이스라엘 태생으로 2차 대전과 이스라엘 독립전에 참전했던 애국자다.

중령 예편 후에는 2차 대전 직후 아버지가 유산으로 물려준 선박화물운송업
이 신통치 않자 미국으로 건너갔다.

12년간의 항공화물 주선업으로 얼마간의 재산을 모았고, 42세 이른 나이에
은퇴해 마이애미로 갔다.

허나 일복이 많은지 그곳에서 파산한 여객선사 관리자로 선임되며 현업에
복귀, 드디어는 유람선업에 진출했다.

창업주 테드 애리슨이 기초를 잡는데 그쳤다면 그의 아들 미키 애리슨은
제국을 건설했다.

아버지 테드는 돈벌이보다 교육, 문화, 자선사업에 더 관심이 많았던
듯하다.

창업한지 7년만인 55세에 일선에서 물러나 지난 10월 사망할 때까지 20년
동안 플로리다와 이스라엘을 위해 자선 및 사회사업가로 활동했다.

이에 비해 아들 미키는 타고난 사업가다.

1979년 당시 30세 나이에 유람선 3척, 연간 4천5백만달러 사업을 물려받아
유람선 45척에 연매출 36억달러, 순이익 10억달러, 기업가치 3백억달러의
초대형 기업을 빚어냈다.

그 자신 미국 32대 부호이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자선사업가이기도 하다.

카니발의 성공은 사회문화적으로 의미가 참 많다.

음식, 가무, 운동, 관광, 휴식, 도박, 쇼핑까지 지상의 모든 즐길 거리를
배 위에 실어 사람이 아닌 놀 거리가 사람을 찾아 모이도록 한 착상이 우선
기막히다.

미국적 사고방식이 아니고선 힘든 일이다.

베이비붐 세대 재벌2세가 베이비붐 대중의 독특한 오락문화를 창조해 향후
10~20년까지 고도성장을 기약하고 있는 점도 역사적 필연을 느끼게 한다.

또 "러브보트"(1977~1986)며 "판타지 아일랜드"(1977~1984)와 같은 TV
드라마가 이로써 시작해 히트했고, 이것이 지금 또 거꾸로 사람들 마음속에
향수를 일으켜 카니발로 향하게 하는 현상도 놀랍기만 하다.

현 추세대로라면 카니발은 2006년 관광수입에서 한국을 능가한다.

이쯤 되면, 약간 과장해서, 카니발은 한국과도 바꾸지 않을 미국 재산으로
쳐지지 않을까.

< 전문위원 shind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