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해빙을 맞고 있다.

페리보고서, 베를린 회담과 미사일발사유보에 이은 미국의 대북경제재제완화
발표, 남북정상회담가능성, 정주영-김정일회담 등 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속에 최근 워싱턴에서는 긍정적 상황전개를 있게 한 역사적
뿌리가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고 또 이를 근거로 향후를 진단해보는 포럼이
열렸다.

94년 제네바합의를 이끌어 낸 로버트 갈루치 전북핵대사, 카터행정부 당시의
윌리엄 글라이스틴 전주한미국대사 그리고 돈 오버도퍼 전 워싱턴 포스트
외교전문기자 겸 현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참석, 미국의 한반도정책에 대한
회고와 전망을 정담형식으로 펼쳤다.

사회는 스티브 카스텔로 (주)프로글로벌 사장이 맡았다.

그 주요내용을 정리한다.

< 정리 = 양봉진 워싱턴 특파원 http://bjGlobal.com >

[ 참석자 : 로버트 갈루치 < 전 북핵대사 / 조지타운대 교수 >
윌리엄 글라이스틴 < 전 주한미국대사 >
돈 오버도퍼 < 존스 홉킨스대 교수 / 전 워싱턴 포스트 외교전문
기자 >
사회 : 스티브 카스텔로 < (주)프로글러벌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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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북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의 분주한 방문외교
가 극히 초기단계이긴 하지만 성과를 거두기 시작하고 있다.

북한은 건전한 대화분위기를 해치지 않겠다며 미사일 발사를 미루어 놓고
있으며 이에 화답하듯 미국은 북한에 대해 행정재량으로 가능한 경제제재를
이미 완화했다.

북한외상이 미국을 방문, 미국의 소리(VOA)와의 회견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으며 현대그룹의 정주영 명예회장이 김정일을 두 번째
로 면담해 민간차원의 교류가 확대되고 있다.


<> 갈루치 :최근의 미.북 관계는 매우 긍정적이다.

미국과 남한이 추구해 온 그간의 포용(engagement)정책 또는 햇볕정책
(sunshine policy)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의 어려운 사정 역시 관계개선에 이르게 한 요인이었다고 본다.

특히 빌 클린턴 대통령이 대북 협상을 위해 현직 관료가 아닌 윌리엄 페리를
대북 정책조정관으로 임명했던 것은 매우 혁신적인 발상이었으며 페리조정관
의 인격, 의회등과의 신뢰적 대인관계, 그리고 일본 중국 북한에 대한 빈번한
방문이 대북관계개선의 큰 밑거름이 됐다고 평가한다.

이왕 할 것이었다면 경제재제완화가 5년전에 이루어졌어야 할 것 아니냐는
질문도 있지만 지난 5년을 헛되이 낭비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보이지 않는 초석을 쌓아왔을 뿐 아니라 또
그 결과 얻은 것도 많다.

북한의 핵동결을 얻어냈으며 그 대가로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해주고
있기도 하다.


<> 오버도퍼 :클린턴과 김대중정부의 최근 조처들이 성과를 거두려면
의회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화당은 클린턴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왔다.

벤자민 길먼 국제관계위원장 등은 대북경제재제완화를 반대했지만 상황이
여기까지 이른 이상 의회로서는 더 관용을 보여 행정부가 주도하는 노선에
지지를 하든가 아니면 스스로 더 좋은 새로운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에 대한 중유공급과 관련된 지출승인에 대해 확고한 입장정리
를 해야 함은 물론 경수로설비설치를 위해 필요한 법률적 기술적지원 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사전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 갈루치 :제네바 핵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세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영변핵시설사찰,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방지, 그리고 남북관계개선이
그것이다.

그러나 남한은 미국과는 매우 다른 세가지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남한은 협상과정에서 미국이 북한에 무언가 양보를 할지 모른다는 점,
북한이 남한과 미국간을 이간질하려고 든다는 점, 남북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과 남한의 관심이 달라 협상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지만 결국 한승주
당시 외무장관은 남북대화가 협상의 전제조건(precondition)이 아니라
주요현안(integral part)이라는 쪽으로 정책적 방향을 완화시켜 협상의
걸림돌을 제거시켜주는 지혜를 발휘했다.

그의 정치적 생명에 마이너스가 된 이러한 방향선회에 따라 협상이 탄력을
받을 수 있었고 북한에 대해 중유공급, 경수로건설, 미.북관계개선 등의
세가지 주요 선물을 던져주고 협상을 타결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합의에 따른 가장 큰 부담은 역시 남한의 몫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2기의 핵발전소건설 예상비용 50억달러를 한국이 부담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언론은 설치될 원자로가 한국형이냐 미국형이냐에 대해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이 과정에서 수도 없이 한국형이라고 대답해야 했다.

<> 오버도퍼 :흔히 대사는 그저 심부름이나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특히 한국주재 미국대사는 주한미군사령관과 함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승만정권 말기의 경우 당시 미국대사는 경무대에 미국기가 달린 차를 타고
들어가 이제 하야할 때가 됐다는 이야기까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찌됐건 미북관계와 그 정책에 관한한 대통령보다는 바로 그밑에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컸다.

노태우정권하에서는 김종휘씨가, 김영삼정권하에서는 한승주씨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현 김대중정부하에서는 성격이 매우 달라졌다.

임동원씨가 실무자로 있지만 외교에 관한한 김대중 대통령이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느끼고 있고 또 주요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 갈루치 :김영삼 전대통령은 당시 처한 상황에선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긴
하겠지만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결정과 태도를 보이곤 했다.


<> 글라이스틴 :한반도문제에 있어 카터 전대통령의 미군철수결정과 이의
번복은 커다란 전략적 실수였다.

그는 한국의 인권을 거론하며 박정희 전대통령에게 미군철수라는 카드를
들이댔지만 한.미관계를 악화시키는 결과만을 빚었다.

어찌됐건 카터 전대통령의 완강함 때문에 박정희 전대통령이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했고 철군계획이 철회됐다.

이같은 철군강행과 번복과정은 미국에게는 오래 남을 오점이 됐다.

카터가 한반도문제에 대해 자세한 검토와 신중한 태도가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은 박정희 전대통령과의 정상회담추진 과정에서도 드러난 적이 있다.

카터는 정상회담이 확정된후 갑자기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이 회담에 김영삼씨
도 참석시키라는 지시를 하기도 했다.

이는 외교관례를 무시한 너무 황당무계한 것이었다.

반면 레이건 전대통령은 외교정책상 외부적으로 강하게 보이려 노력했으며
또 다르게 행동했다.

당선후 전두환씨를 만나 김대중씨의 사면을 강요하는 능력도 발휘했다.


<> 오버도퍼 :김대중 대통령을 탄압한 박정희 전대통령은 초기부터 미국의
불신을 받은 인물이었다.

철군이 거론되자 그는 핵개발을 하려 들었고 미국은 이같은 계획을
저지하는데 애를 먹었다.


<> 글라이스틴 :한국인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미국과 가장 가깝게 지내고 있지만 한국인들의 깊은 곳에는 미국에 대한
보이지 않는 불신(mistrust)도 들어 있다.

이에 따른 숨겨진 반미감정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불신과 반미감정은 절제된 채 잘 관리되어 왔다.


<> 갈루치 :그같은 점을 느낄 수 있는 단적인 예를 든다면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긴장상태에 있을 때 남한사람들은 오히려 불안감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러시아와 미국이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때 유럽에서 느끼는
불안감이 적었던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예를 들면 미국은 핵확산금지조약이라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고 또 북한이 이를 탈퇴하겠다고 할 때 충격을 받지만 남한인들은
핵확산금지조약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과정에서 밤낮 주말없이 함께 일하는 사이에 한미는
훨씬 더 가까운 친구사이가 되었다고 본다.


<> 오버도퍼 :최근 뉴욕타임즈등에 대서특필된 노근리 사건은 충격적인
일이다.

나는 전쟁말기에 한국에 군인으로 파견되어 그 진상을 잘 모른다.

하지만 그같은 일이 발생한 것은 한국과 미국을 위해 매우 불행한 일이다.


<> 갈루치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불행한 과거 때문에도 어려운
사이였다.

그러나 김대중대통령의 일본방문과 이어 이어진 대북관련협조로 양국관계가
상당히 달라졌다.

어떤 의미에선 대포동미사일 금창리 핵시설 등에 의한 북한의 위협은
한미일을 새로운 동반자관계로 변모시켰다고 볼 수 있다.

전쟁직전까지 갔던 1994년 카터가 김일성과 평양에서 마주 앉았을 때 카터의
협상 준비상태는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그를 위해 여러 가지 브리핑을 했지만 그리 편안하게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반면 페리의 접근은 매우 잘 정돈 된 것이었다.

결국 페리는 현재 전개되고 있는 해빙무드를 조성하는데 성공했고 또
그 결과로 평가받을 것이다.


<> 오버도퍼 :미국은 선거를 앞두고 있다.

대북정책은 선거의 중요쟁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선거 때문에 클린턴 대통령은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선거 때문에 지금까지의 노선이 수정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여러 가지 난관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조지 부시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주변환경이
크게 변하지 않는 한 미국의 대북정책이 급선회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 글라이스틴 :한국도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

이같은 선거가 한국이 택할 수 있는 폭을 줄여놓을 수도 있다.

이회창야당총재가 김대중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점이다.

하지만 큰 변화가 있으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대북정책과 관련해 의회가 반대하고 있지만 현재 페리가 내놓은 것보다 더
나은 대안은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남-북-미 관계 일지 ]

<> 98년

- 3월 25~27일 : 대북 구호물자 전달을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베이징)
- 4월 20~21일 : 북.미 1차 미사일회담(베를린)
- 6월 16~23일 : 정주영 현대명예회장, 소떼와 함께 방북
- 6월 22일 : 북한잠수정 동해안 침투
- 8월 21일 : 북.미 고위급 회담(뉴욕)
- 8월 31일 : 북한 ''광명성1호'' 인공위성(미사일) 시험 발사
- 9월 10일 : 고위급회담 일괄타결 합의 발표
- 9월 28일 : 북.미 테러지원국 해제 실무회담(워싱턴)
- 10월 1일 : 북.미 제3차 회담(뉴욕)
- 10월 27일 : 정 회장, 소떼(2차분)와 함께 방북
- 10월 30일 : 정 회장,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
- 11월 18일 : 현대, 금강산 관광 시작

<> 99년

- 1월 4일 : 김 대통령,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포괄적 방안 제시
- 2월 3일 : 북한, 하반기 남북 고위급 정치회담 제의
- 3월 11일 : 한국적십자사, 대북 비료지원 모급계획 발표
- 3월 29일 : 북.미 제4차 회담(평양)
- 5월 24일 : 미국 금창리 조사 완료
- 5월 25~28일 : 페리 조정관 방북, 페리구상 전달및 미사일 재발사
- 6월 23~24일 : 북.미 1차 고위급협의(베이징)
- 7월 2일 : 한.미 정상회담, 북한 미사일 추가발사 중지촉구(싱가포르)
- 7월 27일 : 한.미.일 외무장관, 북한 미사일 추가발사 중지촉구(싱가포르)
- 8월 3~9일 : 북.미 2차 고위급협의(제네바)
- 9월 7일 : 북.미 3차 고위급협의 개막(베를린)
- 9월 12일 : 한.미.일 정상회담 개최(오클랜드)
북.미 고위급협의 타결(베를린)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