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 방향을 제시한 페리보고서가 공개됐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냉전체제로 남아있는 한반도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막중한 국제정치적 역할을 생각할 때 이 보고서는 한국은 물론 일본에도
대북정책의 기본 지침이 될 것이다.

협상을 통해 북한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보고서의 기조는 우리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대북 포용정책과도 일치한다.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보고서는 북한의 핵동결에 성공한 지난 94년의 미.북 제네바 합의의 연장선
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자제와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계획 완전 중단 <>한반도의 냉전체제 완전 종식 등 3단계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종래의 "현상유지"에서 적극적인 개입성격의 포용정책
으로 바뀌는 느낌이다.

이 가운데 미사일 발사자제와 이에 따른 경제제재 해제라는 단기 목표는
지난 12일 타결된 미.북간 베를린 회담에서 이미 가시화됐다.

북한의 대외정책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반도에 현실적으로 상존하는 위협을 감소시키는 각종 조치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평화를 담보할 장치가 필수라는 점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한.미의 승리가
확실하지만 주한미군 유지와 안보동맹을 강화하는 등 대북 전쟁억지력을
견지해야 한다는 보고서의 내용은 적절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강력한 경고로 보인다.

페리보고서가 미국의 대북정책을 담은 것이라 해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배려는 소홀하게 느껴진다.

비록 남북 기본합의서의 이행과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언급하기는 했으나
우리 입장이 충분히 반영됐다고 하기는 어렵다.

미국이 어떤 대북정책을 택하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정착되려면
남북관계의 개선이 앞서야 한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정부 역시 미.일과의 굳건한 공조 아래 남북간 직접 대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보고서의 일부만 공개된 탓이긴 하지만 북한이 보고서의 시나리오대로
응하지 않을 경우 북한에 휘두를 채찍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것인지도
궁금하다.

하나를 얻으면 또 다른 것을 요구하는 북한식 협박외교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강경론자들의 주장처럼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은 "잘못을 저지른 자에게
상을 주는" 모순을 지닌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앞으로는 과거의 벼랑끝 전술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북한에
확실하게 인식시켜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