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의 충격이 채가시지 않았던 지난해 5월초 어느날 아침.

광화문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하던 신희택(47.김&장법률사무소) 변호사의
호출기와 핸드폰이 한꺼번에 울렸다.

볼보로부터였다.

"최종 계약서를 준비해 들어오시라"는 전갈이었다.

1백여일 가까이 밤을 세우며 속태우던 일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양.수도계약서는 부록까지 수천쪽에 달해 꼼꼼히 챙기는 데에만 꼬박 하루가
걸렸다.

의뢰인이 "결심"하는데는 그러나 많은 서류가 필요치 않았다.

그리고는 5월7일.

삼성중공업 이해규 대표와 볼보의 벵트 오블링거 동아시아담당 사장은
계약서에 서명했다.

삼성중공업이 재무구조가 견실한 기업으로, 볼보로서도 건설기계 세계
5위에서 3위로 도약하는 날이었다.

"결정은 의뢰인이 하는 것이지만 판단 근거를 제공하는 법률정보 등 각종
밑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변호사의 몫입니다. CEO(최고경영자)들은 언제
결단을 내릴지 모르기 때문에 24시간 대응체제를 갖추지 않을 수 없지요"

작년 2월부터 3개월간은 그래서 술자리, 골프약속 심지어 가족 외식까지
미리 잡아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삼성-볼보건의 경우는 특히 대표적 다국적 기업인 볼보가 한국에 투자
하는냐 마는냐가 우리나라 신인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심리적인 압박감도 심했다고 신 변호사는 털어놨다.

뿐만 아니다.

이 건에 투입된 김&장 소속 변호사만도 모두 30~40명.

<>기업실사 <>환경 <>금융 <>특허 <>부동산 등 분야의 전문가들이 총동원
됐다.

김&장으로서도 사운을 걸었던 셈이다.

협상 과정에서 고비도 적지 않았다.

M&A의 협상의 단골메뉴인 고용승계건부터 공장허가를 둘러싼 규제완화
문제 등 걸리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달리 협상 진행과정에는 공개할 수 없는 곡절이 적지
않았단다.

워낙 큰돈이 오가는 거래라 따져야 할 절차도 많았다.

신 변호사는 이런 실타래들을 상호이해에서 풀었다.

"우호적 M&A의 경우는 철저히 윈윈(win-win) 전략에 입각해 접근해야
합니다. 끝나고 나서도 양쪽 모두 잘 된 딜(deal)이라고 만족해 하지 않으면
그건 실패나 마찬가지입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수억달러짜리 딜을 3개월만에 끝내는건 업계에서는 "초고속"으로 뉴스거리
이기도 했다.

객관적으로 인정도 받았다.

올 3월 발간된 국제적인 법률전문지 "인터내셔널 파이낸셜 로 리류"는
삼성-볼보간 거래를 지난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 M&A건중 최고인 "올해의
거래"로 뽑았다.

신 변호사는 출발부터 "기업변호사"였다.

한.미연합사 법무관으로 병역을 마치고 변호사로 본격 활동하기 시작한
80년부터 김&장에서만 근무하며 기업 관련 일만 맡아 왔다.

서울대 법대 수석졸업(75년) 사법연수원(7기) 수석 졸업 등 모든 조건을
갖췄지만 그는 판.검사의 길을 걷지 않았다.

세계화가 진행될 수록 기업쪽에 나라의 경쟁력이 달려 있다고 믿은 때문
이었다.

"80년대초 사회적 분위기 탓이기도 했지만 당시 우리나라엔 외국인 직접
투자가 지나치게 적었습니다. 차관도입은 상대적으로 많은 기형적인 구조
였지요"

앞으로 국제적인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이고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외국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첩경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82~85년 예일대학에서 유학했던 경험도 이런 신념을 강화시켜 주는 계기가
됐다.

그는 예일에서 국제투자규범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뒤부터는 통상문제에 관련한 경험을 쌓아가며 대표적인 국제통으로도
자리매김을 해갔다.

90~93년엔 우루과이라운드(UR) 서비스 협상정부대표단 참여했다.

대외경제연구소 통상전문가풀의 일원으로 95년 농사산물검역 등의 문제로
미국에서 WTO(세계무역기구)에 우리나라를 제소했을 때도 그의 활약은
빛났다.

신 변호사는 지난해초 이후 부쩍 바빠졌다.

국내기업과 외국기업간 M&A 및 외자유치가 늘면서 자연히 예전과는 다른
규모의 협상을 대리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솔PCS가 캐나다의 벨캐나다 외자유치를 했던 것도 신 변호사가 맡았던
일이다.

현재도 5~6건을 진행중이다.

"우리기업들은 이제까지 사 본 적은 있어도 자기 회사를 팔아본 적은
없습니다. IMF체제가 끝나고 경기가 좋아지면 지금의 경험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협상의 기법이나 가격산정 등에서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한
셈이니까요"

국내 기업에서도 기업변호사를 "주치의"로 생각해 큰 협상이 없을 때도
법률자문을 자주 받는 관행이 정착됐으면 한다는게 그의 바램이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특별취재팀 = 최필규 산업1부장(팀장)
김정호 채자영 강현철 노혜령 이익원 권영설 윤성민
(산업1부) 김문권 류성 이심기(사회1부)
육동인 김태철(사회2부)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