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가운데에는 누가 지어 준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며
내가 노력한 결과로 불려지는 것도 아닌데도 반드시 그렇게 불릴 수 밖에
없는 이름이 있다.

내가 운명적으로 나 일 수 밖에 없듯이, 나는 운명적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내가 나를 버릴 수 없듯이, 우리는 우리나라를 버릴 수 없을뿐만
아니라 아끼고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가정이 없는 개인의 생활을 상상해 보자.

수 많은 인파와 자동차 행렬로 붐비는 도심거리도 밤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각기 보금자리인 집으로 돌아가 내일의 생활을 설계한다.

눈보라 치는 차가운 겨울날에 밤이 되어도 찾아갈 가정이 없는 나그네는
그 삶이 얼마나 외롭고 고달프겠는가.

한 민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 민족이 생명력을 잃지 않고 민족정신을 유지하고 계승할 수 있는것은
국가 라는 삶의 터전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가정이 우리 개개인의 삶의 보금자리요, 요람인 것처럼 민족의 생활
터전은 바로 국가이다.

국가 없는 생활은 민족의 번영은 고사하고 민족이라는 이름마저도
보존하기 어렵다.

애국 애족의 뜻을 우리말 사전에서 찾아보면 제 나라 제 민족을 사랑함
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흔히 애국 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나와는 상관 없고 애국 지사나 고매한
인격을 가진 지도자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생각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애국 애족은 돈 많고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야 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인가.

물론 그렇지도 않다.

애국 애족은 공직자이거나 지체 높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학식과 덕망이 높은 고매한 인격자이거나 큰 재산을 가진 특별한
사람들만이 나라사랑하는 감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애국 애족은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의 현실을 올바로 이해하고 한사람의
국민으로서 자기 자신의 역할을 보다 명확하고 투철한 주인 의식을 갖고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국내 물건을 외국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수입 개방을 할 수 밖에
없다.

수입 개방을 하여도 주인된 우리국민이 수입한 외제 물건을 국산품과
같이 마구 사 쓴다면 과연 현시대에 나라를 걱정하는 주인된 국민이라 할 수
있겠는가.

가까운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몇 년전에 왜 당신네 나라에서는 우리나라
물건을 쓰지 않느냐 는 압력에 못이겨 그 나라 총리가 백화점에서 이 외제
넥타이 좋다 며 선전했지만 그 나라 국민은 총리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얼마나 훌륭한 국민인가.

다음은 얼마전 신문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하루 하루 살얼음을 딛는 듯한 경영위기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 회사를 위해 일해오신 임직원 여러분께 죄송스런
마음뿐입니다"

이 내용은 3천여명의 직원과 더불어 한 회사를 경영하던 어느 경영자가
마지막으로 회사직원들 집으로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일제 치하 36년이라는 억압받는 세월이 또 다시 경제적으로 불어닥치기
전에 나라의 앞날을 멀리 내다 볼 줄 아는 투철한 주인정신 이 필요하다.

한라산에 올라 사면을 보면 제주도 동서남북이 다 보인다.

높이 올라가면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 이 나라 장래를
멀리 내다 보며 애국 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인지 보여주어야 할 때
라고 생각한다.

황재성 < 제주도서관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