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째 계속되어온 한국의 금융위기는 이제 세계경제 전체의 문제거리로
대두되어 IMF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현재의 금융위기는 근본적으로 우리경제의 선진경제 진입과정에 있어
낙후된 금융시장에 대한 필연적인 구조조정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당국의 기술적인 실기가 우리가 부담해야할 구조조정의 고통을
필요보다 훨씬 크게 만들었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현 사태를 기술적으로 볼 때 외부충격이 태국의 통화사태와 홍콩 증시의
폭락이었다면 내부적인 사태의 시발점으로 기아문제를 들수 있으며 이를
몇달간 방치한 것은 정부의 결정적 실기였다.

기아사태는 그 규모와 대표성 때문에 한국의 대기업과 이들에 막대한
규모의 대출을 준 금융기관들, 그리고 이 사태를 처리하는 정부에 대한
대외신뢰도를 아시아의 후발개도국 수준으로 추락시켰다.

또 다른 정책적인 실기는 능력밖의 외환시장 개입이다.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 수준 등으로 미루어볼때 정부 힘으로 시장의 힘에
따라 절하되는 환율을 저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웬만한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짐작할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달러당 1천원 이하에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환율을 저지하려한
행위는 환차손을 피하려는 외국인들의 중권매도 타이밍만 늘려주었다.

그리고 결국은 약정한 환율도 방어하지 못함으로써 정부의 대외적인
신뢰도마저 무너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어떻게 현재의 위기를 이해하고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첫째 내부적으로 사태의 원인이 되었던 기아문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이는 뒤늦게나마 정부의 결단에 따라 수습국면에 접어들었다.

기아사태가 실마리를 찾아 나간다는 것은 기아자동차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경제전체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추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예상되는
기업들의 부도위기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부도위기에 몰린 기업이나
채권자들이 예측가능한 합리적인 수순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이러한 처리방안은 위기상황시 이들이 요행을 바라지 않고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데 필수적이다.

둘째 환율은 현재도 완전히 안정되었다고 볼 수 없는데 이는 정부가
방어할 자신이 있고 경제및 외환 전문가들이 다소 과다하게 절하되었다고
인정하는 시점까지 개입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사실 환율 상승은 플러스요인도 상당부분 존재하기 때문에 굳이
부정적으로만 이를 부각시킬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도 원화 절하는 그동안 지나치게 상승한 임금을 대외적으로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이로 인해 과소비가 줄어들고 근로의식이 다시한번 확립된다면 이는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이상의 긍정 효과를 나타낼 것이다.

또한 단기적으로도 원화 절하는 경상수지 개선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당국은 힘에 부치는 원화가치방어를 위해 시중금리마저 불안케
하기보다는 물가관리에 통화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셋째 증권시장에 있어서는 당국이나 일반투자자 모두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한 냉정한 이해를 바탕으로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처해야 한다.

외국기관투자가들의 주식운용은 대부분 톱다운 어프로치에 의해
이루어진다.

즉 포트폴리오 전략을 담당하는 분석가들이 한 나라의 거시경제상황을
보고 각 나라의 포트폴리오 투자비중을 결정하면 펀드매니저들은 주어진
포트폴리오 금액한도에서 종목을 고르는 역할과 매매 타이밍을 고르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들은 이미 아시아 시장에 대해 연말 결산시점까지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굳이 환율을 방어하거나 부양책을 내놓아 단기적으로 이들을
붙잡을 수는 없다.

차라리 이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일정부분을 정리하고 연말결산이 지난
후에는 다시 현금화시켜둔 자산을 가지고 새로운 포트폴리오 편입대상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까지 IMF지원을 계기로 환율이 안정되고 금융시장이 정상화되면
한국은 여전히 개발도상국 중시중에는 상대적으로 투자전망이 높은
시장으로서 이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우리가 상황의 반전을 위해 할수 있고, 또 해야 될 일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경제의 펀더멘털로 돌아가 우리나라의 실물경제가
견실하다는 점을 보이고 이를 대외적으로 증명하는 길 밖에는 없다.

또한, 부실한 우리나라의 금융시스템에 대해서도 정부의 지원및 지불보증
보다는 우리의 금융시스템이 낙후되어있는 점을 인정하고 하루속히
금융개혁을 진행하고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정리절차를 만들어 이를 천명하는
것이 한국 금융기관에 대한 외국인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