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시까지는 김영신 사장을 만나러 가야 한다.

지영웅은 이미 자동차건 아니면 이 육욕의 화신인 박사장을 다시 보고
싶지도 않다.

얼굴만 봐도 욕지기가 나는 여자다.

그렇게 늙은 것도 아닌데 그에게는 언제나 딱 질리는 얼굴이다.

당장 다른 애인을 구하시지요.

나는 당신과는 정말 안 어울려요.

내 친구를 소개할게요.

그 애는 아주 떡대가 좋고 맷집도 좋고, 아마 세기로는 박사장과 막상
막하일 걸요.

그는 얼른 생각나는 아우나 형이 없었지만 아무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동차는 팔아야 될 것 같고 오늘은 꼭 멋쟁이 김영신 사장을 만나야 일이
제대로 풀릴 것만 같다.

"저 박사장님,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나는 열시에 차표 끊어 놓은
것을 꼭 타야 하고, 박사장님은 일주일에 한번 있는 데이트를 즐기셔야
될 터인즉슨, 제가 필사적인 부릿지를 놓아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사실은 저, 제가 아까 이런 사정 때문에 미리
박사장님에게 삐삐를 쳤는데 응답이 없었기에"

그는 임기응변으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소대가리 형님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공중전화로 간다.

그는 무슨 일이든 용의주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허둥대면서
산만하게 처리한다.

그것이 그의 큰 단점이고 또 모자라는 점이다.

어째던 EQ가 대단히 모자라는 청년이다.

"형, 나 림영이요. 형, 큰일 났어요. 우리 할아버지가 폐암 수술을
받아야 된다고 전보를 쳤걸랑요.

그래서 내려가야 하는데 박사장에게 오늘밤 당장 힘깨나 쓰는 아이
하나 구해줘유. 지금 여기 장미호텔 지하 바 "록색바다"에 박여사님과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알았지 형"

"야, 인석아. 그런 이야기는 진작 하지 않구, 지금에서 하면 어떻게 해.
오늘은 금요일이라구. 일 안 나간 머저리가 어디 있니?"

"형, 금요일은 오히려 한가하우, 주중이 러시지. 찾아 봐유. 걸려드는
대어가 있을 것이니. 히히히히. 미안해요, 형. 요샌 형님 사무실에
대기하는 기쁨조 없어유?"

"임마, 너같은 놈이 있으니, 내가 꼭 신용잃고 욕먹는 망둥이가 된다.

알았어? 임마, 너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구, 아무도 없다구 하구선, 무슨
거짓말 하는거야? 왜 그래? 엉? 왜 그래?"

"형, 구치시계 한게 선물할게. 어서 박사장의 금요보이나 구해줘유.
나는 적수가 안 돼서 사실 힘든 여자였수. 보통내기가 아닌게. 힘 좋은
애를 구해줘유. 물개라구, 형이 아는 애 있잖아.

얼굴 새카맣고 깡마른 걔 있잖아요? 만수던가?"

"알았어, 임마. 이젠 너하고는 장사 안 해. 알갔냐? 너같이 반드름한
애 치고 지구력 있는 놈 못 봤다.

헤까닥 헤까닥 하면서. 다른 일이 있는 거지?"

"아니야, 형. 내가 거짓말 못 해서 좋다구 하셨잖우. 오늘밤 화대는
백만원이유. 팔락거리는 수표가 한장"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