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청수 < 원불교 강남교당 교무 >

우리사회 구석구석이 마치 비리의 온상이기라도 하듯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대형 부정부패사건이 터져나오더니 급기야 사정의 한파가
불어닥치고 있는 듯 하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사정기관이 사회지도층및 고위공직자가 연루된
200여건의 비리사례를 포착하고 은밀한 내사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부정부패를 척결해
나갈 것"이란 단호한 의지를 표명하면서 성역없는 부패 근절을 지시했다고
한다.

200여건의 비리사례.

그 사례에 연루된 사람이 누구일지 몰라도 지금부터 또다시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고위공직자가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 죄인의 모습으로 뉴스의 인물이
될 때면 국민은 또한번 충격과 분노와 심한 배신감을 느낄 것이고,
그에따른 후유증으로 온 사회가 불신의 중병을 앓게 될 것이다.

비리에 연루된 인사들 개인적으로 보면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남달리
지도층인사가 되고 고위 공직자가 되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으로
인생을 달려왔을까.

그런데 탐욕의 사슬에 묶여, 살아가는 동안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도덕적 상처를 입는 것을 볼 때면 인간적인 연민의 정을 느낀다.

그리고 각각의 위치에서 그만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물들이 그같은 일로 예기지않게 좌초당하는 현실을 보면서는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부정부패의 비리사건과 관련해서 수뢰액이 많지않을 때는 "그만한
돈에 자기의 인생을 걸다니..."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인간의 끝없이
채우고 싶은 탐욕스런 욕망이 결국은 파멸에 이르는 함정이구나하는
생각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어느 조사결과에 따르면 직무와 관련된 공직자 비리가 93년에 비해
60~70%나 늘어났다고 한다.

우리는 다행히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발전으로 바야흐로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속에서 도덕성은 오히려 더 허약해지고 말았으니
인간은 참으로 탐욕스런 속성을 지닌 존재인가 보다.

이제 온 국민이 부패불감증에 빠져들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어느때보다
높다.

소위 우리사회의 지도층 인사가 비리사건의 주인공이 될때마다 그
목소리가 공허한 얘기가 아님을 실감한다.

오늘날 우리사회 각 분야에서 놀라운 성취의 신화를 만들어 낸 사람으로
주목받던 인물들이 도덕성의 흠집때문에 그 빛이 바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자기안에 내재해있는 양심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란 그 평범한 진리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한편 부정부패는 비단 우리사회만의 고질병이 아니라 지구촌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는 사회문제인 모양이다.

UN에서도 "공직자 부패 추방운동"을 벌이고 "세계 각국 공직자를 위한
행동강령"을 제정할 예정이라 한다.

그리고 이강령이 총회에서 채택될 경우 각국 공직자의 부정부패 방지를
위한 지침이 되도록 각국에 권고할 것이라 한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OECD에도 가입하고 선진국으로의 새로운 도약을
꾀하는 시점에서 국가의 장래가 밝으려면 "건강한 도덕성"이 가장
존중받는 가치체계가 무엇보다 먼저 이뤄져야 될 것 같다.

그리고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가 마음의 옷깃을 여미고 우러러 볼 사람이
보다 더 많아지면 비리와 부정부패의 문제가 자연히 척결되리라 믿어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