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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섭 전 건설부장관(61)은 나이를 잊고 산다.

장관자리를 떠난지 8년이지난 지금도 여전히 "일을 재미삼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행정쇄신위원회 위원, 산업개발연구원 고문, 건설공제조합 고문 등을
맡아 주요 정책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요즘에는 낙후된 고향발전을 위해 전북경제사회연구원장직을 떠맡아
매주 한차례식 서울과 전주를 오가며 30년 공직의 경험을 후진들에게
전하고 있다.

바쁜 와중에서도 매주 1-2차례식 외부강연활동도 빠뜨리지 않아
주변에서는 "경륜 세일즈맨"으로 부르기도 한다.

최전장관은 전남 남원 출신으로 61년 서울법대를 졸업하던 해에 고등고시
행정과 1부에 합격했으며 지난 81년 행정조사실장, 86년 차관급 소청심사
위원장을 거쳐 87년-88년에 건설부장관을 역임했다.

이후 89년부터 92년까지는 토지공사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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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추창근 사회2부장 ]]

-한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도 여전히 건강해 보이십니다.

"특별한 건강유지법은 없어요.

살고 있는 종로구 평창동 집이 높은 곳에 있어 가파른 1백20개의 계단을
매일 한차례 오르내리면 저절로 운동이 되요.

가끔 아침에 걸어서 1시간 걸리는 세검정 약수터에 다녀와 30분 정도
수면을 취하는 것도 건강에 도움이 되는것 같습니다.

골프는 배우지 못했고요"

-6공초기인 87년말부터 88년까지 건설부장관을 역임하고 이후 4년동안
토지공사 이사장을 지내는 동안 80년대말 최대의 부동산 파동을
경험하셨는데요.

"당시 집값과 전세값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갔습니다.

부동산투기가 기승을 부렸죠.

올림픽이후 부동산경기는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 공약이었던 주택2백만호건설 부동산 투기억제 등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토지공개념 도입, 토지거래허가지역 확대, 신도시건설 등도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토지공개념의 핵심인 토지초과보유 부담금제도 등이 최근 위헌판결을
받는 등 토지공개념의 시행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계절에 따라 옷을 바꿔입듯 제도와 시행방법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바뀌는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의 경우 공동체적 삶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서도 토지공개념의 취지는 존중돼야 합니다"

-평가가 엇갈리는 수도권 신도시건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혼재해요.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부동산투기가 만연하던 80년대말 상황에서
신도시건설은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고 서민층과 중산층의 주택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서울 인구를 분산시키고 복지수준을 높인 것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만
합니다.

다만 신도시 건설과정이 졸속으로 이뤄지다 보니 자재및 인력난, 노임상승
등의 부작용이 있었던게 오늘날의 문제로 표면화된 거죠.

외국에서는 개발계획을 세우는데만 소요되는 5-6년 동안에 신도시 5개를
완성시켰으니 그럴만도 해요.

결국 베드타운으로는 성공한 셈이지만 교육기관 의료시설 문화시설
업무시설 등 자족기능이 미흡한게 문젭니다.

멀지않아 개선되리라 봅니다"

-그린벨트에 대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그린벨트는 간단히 짚고 넘어갈 사안이 아닙니다.

제자 장관으로 있던 시절에도 꾸준히 문제로 제기됐지만 본질은
개발론자들과 환경보존론자들의 상반된 가치기준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요점은 오늘날 우리 국민의 생활환경이 심각한 오염으로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의 우선목표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있습니다.

환경을 보존하고 도시기능을 회복하는데 주안점을 둔다면 그린벨트는
반드시 존속돼야 합니다.

다만 주민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그린벨트정책의 운용의 묘를
살리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린벨트는그것을 규제의 차원에서 볼 것이 아니라 환경문제로 인식해야
해요.

그린벨트문제를 규제완화차원에서 접근한다면 더 큰 부작용을 낳을 거라고
봅니다"

-결국은 모든 문제가 하나밖에 없는 국토를 어떻게 보존하고 균형되게
개발할 것인가로 귀결된다고 생각됩니다만.

"그래요.

가장 절실한 과제입니다.

수도권은 영양과잉에 의한 비만에 시달리고 지방은 영양실조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구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국가경쟁력 제고의 심각한 걸림될이 될
것입니다.

제가 전직관료 학자 업계관계자들이 모여 만든 "국토의 내일을 생각하는
모임" 진행간사도 맡고 있는데 그 문제를 집중 논의하고 있어요.

매달 첫 목요일마다 열리는 이 모임에는 건설교통부 등 정책담당자들도
참석하는데 9월 모임에서는 "수도권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서울 천도론에
대해 의견을 나눌 생각입니다"

-서울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수도권이 지금 비정상적인 "비만"으로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감안할때 미국이나 독일처럼 국제금융 정보기능 등은 유지한채 행정수도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을 고려해볼만 합니다.

이제는 지속적인 규제완화로 기업들이 굳이 인허가기관(행정부) 가까이
있을 이유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들어 오존주의보를 계속 들어야할 만큼 환경파괴가 진행되고 있고
범죄도 갈수록 흉포해지고 있습니다.

수도권 기능을 서서히 지방으로 분산시켜 지역간균형개발을 꾀하자는
일반론도 일리는 있으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통일을 대비하는 차원에서도 수도를 옮기는 방안을 깊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최근들어 부동산투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새롭게 나오는데요.

"이제는 주택보급률이 80%를 넘어서고 부동산투기 규제장치가 많아
부동산시장이 과열될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같이 각종 사회문제를야기시키고 있는 수도권중심 개발이
계속된다면 부동산투기 이상의 문제도 발생할수도 있습니다.

벌써 오염 교통난 물류비용 등 일상생활에서부터 산업에 이르기까지
수도권집중으로 인한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잖아요"

-앞으로 발생할 주택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제 수요와 공급의 문제는 지났다고 봅니다.

주택보급률이 90%를 향해가고 있고 이중 아파트가 전체 주택의 50%를
차지하면서 그동안 도외시해온 "공동주택생활의 질서"를 생각할때 입니다.

하자관리 주차장문제 공동비용 등 아파트생활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를
근접하고 해결할수 있는 제도가 지금은 매우 미흡해요.

따라서 이같은 공동관리와 관련된 각종 규율을 만드는 방안을 행쇄위를
통해 강구해볼 입니다"

-공무원생활을 해오면서 청렴하기로 소문이 나있던데요.

건설부장관을 지낸 이후에도 제대로된 집한채 없었다는 얘기도 있고요.

"공직생활동안 한눈을 팔 여가가 없었습니다.

주변을 가끔 돌아볼때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천직이라는 생각으로 자기자신에 만족했습니다.

저는 8남매중 장남으로 아우들 뒷바라지도 있고 해서 차관보때까지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기는 했어요.

집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87년 장관에 임명돼 상계동 18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과천으로 전세얻어가면서 나온 얘기같습니다.

사실 88년말 장관을 물러나면서는 전세집도 비워주고 당장 살집이 없어
사촌동생이 소유하고 있는 집중 한채를 뺏다시피 싸게 샀어요(웃음)"

-30여년 공직생활중 장관자리도 거쳤고 이후 나름대로 "봉사의 정신"으로
바쁜 삶을 보내고 계신데 특별한 "삶의 철학"이 있으신지요.

"스스로 항상 모든게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열심히 부지런하게 뛰어 단점을 메우고 상사나 동료 부하들
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하며 어렵더라도 최선을 다해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걸 평생의 신조로 삼아왔습니다.

그리고 봉사해야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로부터 30년간 혜택을 받았으니까요.

그래서 지식과 경험을 이웃과 후배 국가에 나름대로 되돌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강연회를 열심히 챙기고 전북경제사회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에 대해 서두르지 말았으면 합니다.

빨리 출세하기 위해 조바심을 갖고 서두르다보면 반드시 잃는게 많은
법입니다.

또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과거처럼 공무원이 모든 분야를 다루며 권한을 휘두르는 시기는 지났어요.

한 분야에서 1인자가 되지 않으면 도태되기 쉽습니다.

공동체의식도 가져야 합니다.

남과 어울려 서로서로 도와주는데서 보람과 긍지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나라 전체가 잘되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길이기도 해요"

-정재계의 "중매쟁이"로 소문이 나있던데요.

"부끄럽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예요.

주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자녀들인데 처녀 총각 몇십쌍을
맺어주었어요.

지금도 중매신청이 많이 들어와요.

나에 대한 신뢰로 받아들여져 기분이 매우 좋아요"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