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신한국당 전국위원회가 이홍구 전총리의 대표지명 동의절차를
밟음으로써 집권 후반기 여당의 국정운영 방향이 얼만큼은 윤곽을 드러냈다.

기타 당직은 금명 발표되겠지만 대표 인선에 있어 여러 대안 가운데
관리능력과 친화력을 높이 평가받는 이대표로의 낙점은 격동보다는 안정
속에서 당면 과제와 장래에 대비하려는 당의 선택을 읽을수 있다.

총선에서 참패를 겨우 면한 여당의 운신에 우리가 각별히 관심을 갖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금의 시국은 여-야가 정쟁으로 허송할만큼 안팎으로 한가하지 않아
선거후유증을 조기 수습하고 생산국회를 출범시키는 일이 어느때보다
긴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임은 집권당에 돌아갈수 밖에 없다.

4.11총선 결과가 민의의 반영임을 누구도 부인해선 안된다.

여 단독으로도, 야3당 합쳐도 과반확보에 실패했으니 여소야소다.

이를 두고 독주를 그만 두고 널리 의논해서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명령
이라는 풀이가 우세했다.

그러나 정당으로서 민의보다 더 다급한 발등의 불은 당리이다.

상위배정 등 벽두 원구성서부터 야에 끌려가다간 청문회개최 등 모든 것을
다 잃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대를 만들겠다는 신한국당의 결의는 공고해
보인다.

반면 여대로 누가 손해를 보는가.

야당 모두다.

그러나 실이 크기론 자민련이상 없다.

이미 확보된 캐스팅 보트를 그로 해서 잃기 때문이다.

국민회의도 여대가 좋을 턱은 없으나 사사건건 협조를 구함으로써 자민련을
키우는 일이 달갑지 않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정가의 이런 파워게임을 즐길 시간적 여유가 없다.

경제의 활성화, 생활의 질적 향상을 비롯한 대내적 당면과제, 북한문제를
둘러싼 국제협력 문제, 경제수역 등 첩첩한 한-일 현안, 무역마찰해소 등
대외적 과제가 이루 꼽기 힘들만큼 산적해 있다.

만일 여-야당이나 정치인들이 무의식중에라도 이런 현안들은 으레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고 한다면 큰 일이다.

이는 권위주의 시대를 동경하는 패배주의요, 민주역량을 스스로 부정하는
중대한 오류다.

선거를 닥뜨려선 계수조차 맞지 않는 공약들을 양산하던 여-야 각당이
선거 끝난지 한달이 다 되도록 전리품 나누는 데만 정신을 쏟지 현실을
놓고 정책을 논하는 모습은 구경할수도 없다.

주지하다시피 내외에 진행되는 변화는 발벗고 따라가려야 전문지식 없인
문제파악 조차 어려울 정도로 핑핑 돈다.

무엇보다 확대일로의 무역-경상수지 적자는 다름아닌 경제체질의 약화를
웅변한다.

그런 심각성을 2020년 7대국 부상이라는 환영속에 혼돈하는 수준 정치라면
나라의 장래는 어둡다.

국회는 하루 속히 그 심각성을 파악하고 대안을 찾는 국민 대표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대권론으로 낮과 밤을 지새는 이땅 토질 속에서나마 상당기간 나라일에
정진하다가 때가 와서 차기를 논하는 모범을 신한국당이 보여주길 바란다.

대선 욕심없음이 관리형이라면 그것을 해내겠다는 이대표의 헌신이
기대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