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거요? 사냥터에서 큰 불행 중 다행스런 일을 만났다는 것은
여러분의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기 위하여 내가 일부러 지어낸 말이었소.

사냥터에서 생긴 일이라고는 매를 사냥하려다가 매의 날개에 얼굴을
얻어맞아 조금 멍이 든 것뿐이었소.

보다시피 그 멍도 이제는 거의 사라졌소.

허허, 내가 큰 불행 중 다행 운운하는 말을 했기에 여러분이 내가
초대하자마자 이렇게 빨리들 달려온 것이 아니오?"

풍자영이 너털웃음까지 웃어가며 변명을 하였다.

"에이,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려고 모였는데 괜히 왔잖아"

일행이 짐짓 시무룩한 표정들을 지었다.

"더 재미있는 일이 있을 테니 자, 우리 술이나 실컷 마십시다"

풍자영이 기생 운아를 재촉하여 손님들의 술잔에 술을 부지런히
채우도록 하였다.

설반은 술잔을 서너 잔 비우고 취기가 오르자 슬그머니 운아의 손을
잡았다.

운아는 풍자영의 눈치를 보면서 설반의 손을 어떻게 처리할까 망설였다.

설반은 망측스럽게도 운아의 손을 자기 사타구니 쪽으로 끌어당겼다.

운아는 온힘을 다해 손이 더 이상 끌려가지 않도록 버티어보았다.

"운아, 너 노래를 잘 한다며.네가 제일 잘 부르는 것으로 한 곡
뽑아봐"

운아는 설반의 요구에 잽싸게 응함으로써 손을 빼어낼 구실을 차자았다.

"손을 높아주셔야 비파를 뜯으며 노래를 부르죠"

"어, 그래? 빨리 한번 불러봐"

설반은 어쩔 수 없이 운아의 손을 놓아주었다.

운아는 비파를 한쪽 무릎 위에 세우고 한줄 한줄 뜯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옛낭군과 새낭군 사이에 끼었네 새낭군도 그립고 옛낭군도보고
싶네 풍채 좋은 두 낭군 모두 버릴 수 없네 간밤에 새낭군과 자는데
옛낭군 찾아와 싸움이 벌어졌네 "야,이것 봐라. 아래쪽 욕심도 많구면"

운아의 노래 가사가 파격적이라 남즈들이 기가찬듯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운아의 노래가 끝나자 보옥이 말짓기 놀이를 하자고 제안하였다.

"슬플 비, 근심 수, 기쁨 희, 즐거울 락자를 계집 녀자에 붙여 그 뜻을
각자 나름대로 설명하는 겁니다.

합격을 하면 문배 (각사람 앞에 놓인 술잔이라는 뜻) 한잔을 마시면
되고, 말이 되지 않으면 벌주를 마셔야 합니다"

모두들 보옥의 제안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