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달부터 수입품의 가격파괴를 몰고올 병행수입을 허용키로
함에따라 국내 유통업계는 또 한번의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될것 같다.

병행수입이란 한마디로 동일한 상표의 제품을 여러 업자가 수입할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병행수입을 허용키로 한 것은 수입상품
값을 턱없이 비싸게 받고 있는 수입업체와 수입품 유통업체들의
폭리에 쐐기를 박고 물가안정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사실 그동안 상표권보호라는 명분에 얽매여 독점수입및 판매를
인정하다보니 일부 인기상품은 수입업자와 중간상들이 부르는게
값이 돼버린 감이 없지 않았다.

주요 수입 소비재가 수입원가의 2.7배에 이르는 값으로 팔리고 있는
반면 같은 종류의 국산품 유통마진은 46%에 불과하다는 소비자보호원의
조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제 병행수입이 허용되면 수입 공산품가격이 절반 가까이 떨어질
것이라는게 재정경제원의 분석이다.

기득권을 향유해온 일부 업자들의 불만이 크겠지만 소비자가 누릴
혜택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병행수입 허용은 명분과 실리면에서 모두 타당성이 인정되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외국산 소비재의 수입홍수를 쉽게 점칠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사치성 소비재수입의 급증이 무역수지악화의 큰 요인이
되고 있는 판에 의류에서부터 골프채에 이르기까지 불요불급한 소비재들을
대량으로 수입해 싼 값에 팔 경우 국내 소비자들의 유난스런 "외제병"에
불을 지르는 격이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여기에다 가짜 상품의 국내 반입이 급증,소비자의 피해가 늘어날
소지도 있다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라이선스 계약보다 직수입판매를 선호하는 외국업체들의
생리로 볼때 대한 직접진출이 늘어나게돼 국내 관련업계의 생산기반이
타격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또 예기치 않은 손해를 입게된 기존의 외국상표 독점 사용권자들이
민사소송등 법정투쟁을 벌일 가능성도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상표법등 법적 근거는 변함이 없는데 그 해석만 병행수입 "불가"에서
"허용"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행수입 허용이 국민경제 전반에 미칠 긍정적 효과를 고려할때
이같은 부작용들에 너무 구애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명분상으로도 모든 상품과 서비스시장이 완전 개방돼가는 무한 경쟁추세에
맞지 않는 낡은 제도는 과감히 정비해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새로운 제도의 정착을 위해서는 몇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과제가
있다.

갑작스런 병행수입 허용으로 빚어질 혼란은 정부와 유통업계가 긴밀히
협조하여 조기 수습해야할 일이지만 수입품과 경쟁관계에 있는 국내
소비재업계는 국산품의 품질및 가격경쟁력을 시급히 향상시키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또한 소비자들로서는 수입품가격 하락으로 큰 이익을 얻게된 대신
무분별한 외제선호를 자제할줄 아는 성숙된 의식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