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훈 경남대교수.국제정치경제>

요즘 세계화란 말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부터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과 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대중들도 세계화란 말을 매우 쉽사리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가발전전략이 되어버린 세계화가 대통령에 의해 여러
자리에서 강조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것이며 또 국가발전전략인
만큼 이를위해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는데 일조를 담당해야 하는
언론과 학자들이 세계화를 운위하는 것도 자연스런 현상이다.

정부의 홍보와 여론주도세력인 언론 학계의 이같은 보조 덕택에
이제 일반 대중들도 세계화란 말을 예사로 사용하고 있는 것같다.

그런데 현재 정부나 언론 그리고 학계를 가리지 않고 강조되고
있는 세계화 논의를 신중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너무나 큰 의욕과
포괄적인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에 정녕 세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분명하지 않고 또 그런 세계화가 실현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가기도
하는 것이다.

정부가 규정하고 있는 세계화의 내용이나 대상을 보면 "세계화는
모든것"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사뭇 혼란스럽다.

예를 들어 기업이 세계화하거나 국민의식이 세계화해야 한다는
말은 납득할 만하지만 "정당도 세계화"하고 "교통질서도 세계화"한다니
세계화의 의미가 매우 혼란스럽다.

정부가 이러하니 언론이 크게 다를리 없고 이제는 학자들마저 유사한
형국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화에 대한 명확한 성격 규정이 되어있지 않은채 우리 국가의
여러 부분들에 대한 세계화가 강조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설계도 없이 집을 짓는 일에 비유할 만하다.

정부나 언론 그리고 특히 학계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바로 이
세계화의 개념적 기초를 확보하는데 노력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국가발전전략으로서의 세계화가 현재와 같이 엄청난 내용을
포괄하고서야 그 실현가능성에 대해 누구든지 의구심을 품지 않을수
없게 되며 설혹 그 목표가 실현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현재 우리 정부의
추진방법에는 재고의 소지가 많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정부가 의도하고자 하는 그런 세계화를 달성하자면 최소한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현재 세계화는 여전히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그 전략의 추진 주체도 정부다.

그러나 이 전략은 세계화라는 범세계적 흐름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세계화가 아직도 주로 경제 영역에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면 세계화의
진정한 주체는 기업이어야 한다.

우리의 기업들은 전세계를 무대로 일류 기업 활동을 할수있는 역량도
있고 잠재력도 무한하다.

정부는 정부의 주장대로 자율화 탈규제 정책기조를 통해 기업이
세계화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제 정부는 그 이상을 하고자 해서는 안된다.

그럼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문민정부는 기업이 세계화하도록 중단없는 개혁을 해야한다.

정치를 민주화하고 교육을 개혁하고 제도를 고치고 부정부패의 소지를
없애고 등등.정부가 이일을 잘해야 한국이 세계화하고 세계중심국가로
도약할수 있다.

정부는 세계화를 개혁과 등치시키고 있는데 세계화와 개혁은 엄연히
다르다.

모든 면에서 세계의 일류가 되는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이 열심히 한다면 우리 경제는 세계 일류의 경제가
될수 있다.

나머지 부문들의 일류화는 어쩌면 경제를 따라가게 되어있다.

그리고 나머지 부문들이 일류화하는데는 부득불 시간이 걸릴수 밖에
없다.

그 시간을 줄이는 길이 개혁이며 그런 만큼 개혁은 어려운 과업이다.

그럴수록 정부는 개혁에 매진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