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이후 새정부는 실업계와의 관계설정에서 과거 정경유착 의혹의 탈피를
지고의 목표로 설정하고 이에 철저히 매진해왔다.

그러한 의지는 "내 임기중 단 한푼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누차에 걸친 선언에 축약돼 있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이다.

국민 일반이 일선공무원의 돈받는 습성이 되살아난다고 우려하긴 해도
김영삼대통령이 취임후 재계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지는 않았다고 믿는 신뢰의
조성 하나만으로 대성공이다.

그것은 결벽에 가까울 정도다.

부패가 상식화되던 사회에서 최고 지도자의 그같은 몸가짐은 확실히
바람직한 새바람이다.

그러나 결벽에는 부작용이 있을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깨끗한데 최고의 가치를 두다보면 배나무 밑을 지날때 갓끈 고쳐매지
않듯이,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일은 비록 해야 옳은 일일지라도 회피하려는
풍조가 생기기 쉽다는 것이다.

또하나의 우려되는 측면은 우리가 깨끗한데 누가 뭐라겠는냐는 지나친
자신과 함께 이러다가 얕뵈지 않을까하는 정반대의 자의식이다.

근래 정부의 정책입안과 시행과정에서 과연 이같은 일은 없는지를 살필때
그것이 노파심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정면으로 눈에 띄는 부분은 지난 27일 청와대의 회동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을 독려하는 김대통령의 담화 말미에 "이 법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잘못하면 오해를 살 여지도 있다"는 지적이다.

주지하다 시피 최대현안으로 부상한 이 공정거래및 독과점 규제법은 법
자체의 규제대상이 대기업일 뿐더러 이번 개정의 핵심이 30대그룹 계열기업
의 편법인 출자한를 현행 순자산의 40%에서 25%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
이다.

이같은 정부의 움직임에 대하여 재계가 크게 반발을 보여온 것 또한 사실
이다.

이런 시점에서 나온 대통령의 당부이니 만큼 그속에서 법개정의 정당성이
강조됨은 아무 의외성이 없다.

그러나 "재계의 반발이 있다고 해서 정부가 후퇴하면 국민으로부터 오해를
살 여지도 있다"는 뜻의 일종의 주의환기가 그속에 곁들여짐으로서 오늘날
상황전개의 일단을 읽게 만들었다.

대그룹과의 관계에서 정부가 받을수 있는 오해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다름아닌 수회 또는 정치 자금 수수라고 밖엔 해석이 어려워, 당혹감마저
느끼게 된다.

개혁을 표방한 정부라고 할진대 일련의 새정책을 펴나가면서 역풍을 전혀
예상하지 않는다면 잘못이다.

오래 누적된 역대정권의 과오의 착오가 과감히 척결될뿐만 아니라 그
자리가 옳은 것으로 대치되려면 일정한 마칠은 불가피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최근 정부 각부처의 정책결정에 대해 당해 업계나 개별업체의
반발이 표면화 되는 현상을 정부의 권위실추 때문이라거나 정경 또는 관과
업계간의 유작이라고 치부하는 형식논리에 우리는 반대하며 나아가 정부의
고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각 사안의 실질적 내용과 각 대안간의 이해
득실 비교이다.

예의 공정거래법 개정에 있어서도 그렇다.

국경없는 경쟁시대에 들어서서 기대한 외국기업은 고삐없이 설처대는데
이때에 국내기업군의 성장을 묶어두는 정책의 실리가 충분히 크냐의 여부,
한도 40%를 25%로 급감하는 속도의 적정성, 기업 소유분산의 세제활용 대안
가능성등의 핵심사항이 실질기준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만일 검토의 기준속에 정경유착 오해의 회피가 조금이라도 끼어든다면 이는
본말전도가 아닐수 없다.

공정거래법뿐 아니다.

중국항로 배분에 대한 업체발발, 한양의 합리화를 둘러싼 주공반발등
비교적 단순한 대립에서 토초세 존폐, 은행법 개정방향, 정부기업 민영화
원칙, 사회간접자본 민간참여조건등 원로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대립과 마찰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의 해석에서도 우리는 편협하고 싶지 않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정부내의 대립은 물론 사회에 불협화로 비칠
일체의 마찰은 노출이 최대한 억제되고, 국민은 거기에 순치되어 왔다.

6.29이후, 특히 새정부 출범후의 대조적인 사회분위기에서 은폐돼 오던
대립, 더많이 발생하는 새로운 대립들이 여과없이 노출되고 있다.

이에 국민도 언론도 놀라고 과잉반응하는 일면도 크다고 본다.

민주정치에서 대립의 은폐는 불가능하고 또한 그래서도 안된다.

독립된 인권간에 이해와 의견의 대립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대립없는 것이
이상하다.

문제는 이 사회의 대립에 대한 조정능력이요 지양통일 능력이다.

충분히 보장된 토론후에 양보다 타협이 추구되며 필요하면 표결로 일안이
채택되고 일단 결정이 나오면 그것이 존중되는 풍토가 양성돼야 한다.

이때 구성원 특히 전문인의 지혜를 유감없이 발휘시켜 시행착오를 최소화
하려면 고위 결정권자들이 앞지른 견해표명을 자제해야 한다.

먼저 위의 뜻이 나오면 회의는 하나마나 일사천리로 속결된다.

지난뒤에야 졸속이 드러나고 다시 고치는 시행착오가 시대가 바뀌어도
끝없이 반복된다.

슬픈 한국적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