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은 정치의 한 해였다.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에서 모두 정권이 바뀌었다. 정권이 바뀐다고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의 큰 흐름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정치가 갖는 중요성을 생각하면 그 의미가 없을 수 없다.

중국은 정권 교체라기보다 권력 승계다. 그 권력이 처음으로 ‘태자당’ 출신에게 넘어갔다. 태자당 간에도 경쟁이 치열하다지만, 공개경쟁과 같겠는가. 이것은 ‘공산당 독재하의 자본주의’라는 모순된 체제가 태평천국의 난 이래 최대의 불평등으로 이어진 것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그러나 지금 중국에서 태평천국의 난 같은 것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 그보다는 모순이 외부로 발산돼서 공격적 민족주의로 나아갈 가능성이 월등히 높다.

일본의 정권 교체는 2007년 한국 대선과 닮았다. 3년 전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진보적인 민주당이 집권했지만,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국민은 무엇보다 경제 문제 해결을 기대했는데, 엉뚱하게 미·일 동맹 문제부터 건드리더니 쓰나미에 이은 원전 사태에서 능력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올해 정권교체로 들어선 자민당 정권은 일부 극우파 인사들로 채워졌다. 결국 일본은 전후 일관되게 진행돼온 우경화에 가속도가 붙게 됐다.

한국에 이런 것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난 60여년간 이룬 ‘대약진’의 기본조건을 흔드는 도전이다. 한국의 대약진의 바탕에는 무엇보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 하에 성립된 세계질서에서 중국 일본과 대등한 민족국가가 될 수 있었고 그 위에서 동북아의 평화가 유지됐다는 조건이 있었다.

이렇게 보면 한·중·일 관계를 보는 데도 미국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올해 미국 대선의 결과는 긍정적이다. 종교적 근본주의와 시장 근본주의가 득세하는 공화당의 후보보다 오바마가 재선된 것이 나쁘지 않은 것이다. 적어도 지난 부시 정권 때와 같은 ‘무지’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은 피한 셈이다.

한국의 대선은 어땠는가. 그 과정을 보면 긍정적인 면이 있다. 두 정당이 별로 다르지 않은 공약으로 대선을 치렀다. 안보문제에서 과거보다 근접했을 뿐 아니라, 주전장(主戰場)이 된 경제문제에서 큰 차이가 없는 공약을 했다. 그만큼 정치 지도자들 간에 인식의 공유 부분이 넓어진 것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외부 환경 변동에 대응하는 힘은 한국 자체의 능력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런 변동을 읽는 능력뿐 아니라, 내부 갈등을 해소해서 단합된 대응을 하는 능력이 결정적이다. 한국처럼 강대국 사이에 끼인 나라에서 특히 그렇다. 실제로 한국은 19세기에 그런 능력이 없어서 망국으로 간 뼈아픈 경험이 있다.

내부 갈등을 해소하는 것은 ‘사회통합’이라는 포괄적 과제다. 경제적 문제로 좁혀보면 더 구체적 필요성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 일본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단순히 경제적 이유만이 아니라 민족주의의 공격성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도 그렇다. 한국은 그런 움직임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경제통합도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안보에 위협을 느낀 베네룩스 3국의 제안으로 시작됐던 것이다.

그러나 FTA는 국내적 갈등을 일으킨다. FTA에는 그로 인해 손해 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이들에 대해 적절하게 보상하는 것이 FTA의 성공 열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일일이 보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사회안전망 확대가 불가피하다. 그런 이유로 복지제도가 가장 발달한 북구국가가 가장 개방경제라는 것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FTA와 복지의 관계는 한 예일 뿐이다. 2012년에 드러난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데는 모든 면에서의 사회통합이 필수적이다. 이 문제는 결국 새 정부가 선거 때 한 공약을 지키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익집단에 선심성으로 한 공약까지 지킬 수는 없지만, 일자리 복지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한 약속은 지켜야 할 것이다. 정치의 한 해였던 2012년에 떠오른 과제를 2013년 이후에 해결할 수 있을지는 새 정부가 실제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가에 달려 있다.

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leejm@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