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이슈 브리핑
재생에너지 개발 막는 시장교란행위
그롤라곰(grolar bear) 또는 피즐리곰(pizzly bear)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북극곰, 회색곰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이다. 하지만 그롤라곰, 피즐리곰은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지구온난화로 알래스카, 캐나다 등지에 서식에는 북극곰이 빙하가 녹으면서 생존을 위해 내륙으로 이동하고 있다. 북미, 유럽, 아시아 북부 등에 서식하는 회색곰은 따뜻한 북쪽으로 서식지를 옮겼다.

지난 500만 년간 교류가 없던 두 종류의 곰이 만나 새로운 교배종이 탄생했다. 수컷 회색곰(grilzzly)과 암컷 북극곰(polar)이 만나 그롤라곰이(gr+olar), 수컷 북극곰(polar)과 암컷 회색곰(grizzly)이 만나 피즐리곰(p+izzle)이라는 새로운 종이 나타난 것이다.

지구온난화 부작용은 이러한 생태계 교란에 그치지 않는다. 혹한과 폭설 등 북미 지역의 한파경보, 한겨울 기온이 20℃에 달하는 유럽의 기상이변과 가뭄·산불·홍수·태풍 등 커다란 자연재해는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안겨주었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의 핵심 원인으로 산업화 이후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 평균온도 상승(+1.11℃)을 지목했다.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2021년 9월 기준 전 세계 134개국이 탄소중립을 선언·지지하는 등 움직임도 거세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14개국은 관련 법제화까지 마쳤다. 또 2022년 말 기준 397곳의 기업이 RE100에 자발적으로 가입했다. ‘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인 RE100은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사용한다는 자발적 캠페인으로, 지난 2월 기준 우리나라 기업 27곳이 가입했다.

재생에너지 전환 필수 과제로

RE100은 기업의 자발적 참여이자 약속이다. 기업 이미지와도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또 RE100에 선제적으로 가입한 글로벌 기업들은 공급망에도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한다. 전기차 생태계에서는 제조사가 배터리 공급사에 재생에너지 활용을 요구하고, 배터리 공급사는 다시 소재사에 재생에너지 활용을 요구하는 등 재생에너지 사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기업경쟁력인 동시에 생존 수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석탄·석유 같은 블랙 에너지 활용에서 재생에너지·수소 등 그린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그린에너지의 전환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지만,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확대의 한계와 오해는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많은 이가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환경을 외국과 비교하며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풍력은 풍량과 풍질이 좋은 유럽과, 태양광은 일조량이 많은 중동과 비교하는 식이다.

지역마다 자연환경이 다른데도 비교군으로 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유럽과 중동에 비해 재생에너지 발전 환경이 좋지는 않지만, 우리나라는 중위도라는 장점이 있다. 즉 풍력과 태양광이 모두 가능한 입지다. 이 때문에 해상풍력을 얻으려는 유럽 등 선진 기업들이 한국에 진출해 사업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들이 차세대 시장으로 한국을 꼽은 이유는 정부의 확고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기조와 우수한 공급망(철강, 요소 기술 제작, 건설 등)이다.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할 경우 최소 7~8%의 내부 수익률(IRR)을 낼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난제로 꼽는 것이 있다. 해상풍력뿐 아니라 수소 등 여러 청정에너지 생산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민원 이슈, 사업개발자의 시장교란행위다.

청정에너지 사업을 추진하는 데 민원 보상 기준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것이 문제다. 사업 개발 기간이 길어져 비용이 늘어나고, 사업 추진 자체가 좌초되기도 한다. 청정에너지 사업으로 기존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생업에 피해를 입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같이 가는 공동체로 인식해야

현재 보상 과정은 이러한 문제를 단순히 보상금, 위로금 등 ‘큰 규모의 돈’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이는 올바른 해결책으로 보기 어렵다. 기업이 지자체 및 지역사회와 함께 상생 또는 지속가능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업 추진 시 기자재 운반을 위해서는 도로 등 인프라를 활용해야 한다. 이때 관련 인프라 개선 등으로 추가적 지역 고용을 증진하기 위한 관련 제조설비 유치, 운영 인력 활용, 전문가 양성 등 상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가능한 한 기업이 활용하는 인프라, 설비, 건물 등을 지역주민과 공유하면 더욱 좋다. 지역주민을 설비 관리·보수·운영 인력으로 활용하고, 지역주민과 개발 이익 공유를 확대하는 등 기업·주민·지자체가 사업 공동체로서 재생에너지가 지속가능한 사업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지역주민 역시 기업을 장기간 사업 동반자, 지역공동체로 인식하고 협력하게 될 것이다.

다음 이슈는 사업 개발자의 시장교란행위다. 지난해 발생한 모 국립대 교수의 ‘새만금 해상풍력 7200배 먹튀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의지 없이 확보한 데이터나 인허가권을 파는 행위는 근절되어야 한다. 개발 예정지를 먼저 사들인 후 사업자에게 비싸게 되파는 일명 알박기 등 투기 행위를 통해 다른 사업자의 진입을 막고 프리미엄만 챙기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이 누적되면 초기 개발자는 많은 수익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총사업비를 증가시켜 국민의 전기요금으로 전가되거나, 세금으로 보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현재 태양광발전의 상업운전개시 전까지 사업권을 팔 수 없도록 하는 ‘양수·양도 제한’이 정답일 수는 없지만,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재생에너지가 꼭 필요한 사업자의 원활한 사업 추진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역할도 중요한 부분이다. 아직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수소 등 청정에너지 사업은 정책 지원, 특히 재정 지원 없이는 사업 추진이 어렵다. 그린에너지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정부는 탈탄소 시그널이 반영되는 시장 및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수소 등 친환경에너지 사업 시작 단계부터 정부가 위험부담이 큰 비용(sunk cost)을 부담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원 지원, 인허가 신속 처리 등 사업을 밀착 지원하면서 기업 친화적 산업 생태계를 구축한다면 민간 차원의 투자시장도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이는 곧 우리나라 친환경 사업의 경쟁력이 탄탄해지는 출발점이 된다.

주영근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