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남발 '채무 제로' 2단계 실험 시작할 때
2013년 3월, 경남도청은 ‘진주의료원 폐쇄’ 관련 시위로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당시 한국정부회계학회장 자격으로 ‘찾아가는 세미나’를 추진했는데, 경남도청이 첫 번째 대상으로 꼽혔다. 2개월간의 재정 진단 결과를 도청 강당에서 발표했다. 저성장·저금리·저출산의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 재정관리 전략을 전면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도지사가 직접 몇 가지 쟁점을 확인하고는 “학회 제안대로 집행하고 결과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 후 중앙정부에서 열린 몇몇 회의에서 경상남도의 우수 사례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불가능해 보이던 거가대로 비용 지급 방식을 재협상하고, 기금을 통폐합하는 등의 노력은 재정 효율화 우수 사례로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 노력이 쌓여 지난달 1일 경상남도는 ‘채무 제로(0)’를 선언했다. 광역 지방자치단체로는 국내 최초다.

듣고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예산에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경상남도는 몇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강력한 리더십이다. 이해관계자들의 반대에 부딪힐 때 공무원이 꺾이지 않도록 하려면 리더의 강력한 지지와 지원이 필요하다. 12개 기금을 없애는 과정에서 기금 사업 수혜자들의 반발이 심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추진력이 필요하다.

둘째, 기금이나 출자·출연기관의 개혁은 조례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개혁 과정에서 의회의 협력을 유도한 것도 주효했다. 채무 제로 선언식 행사에서 도 의회 의장에게 감사패를 준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재정점검단이란 별도의 컨트롤타워를 두었다는 것이다. 예산담당관실은 매년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해야 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개혁을 시도할 여력이 없다. 재정점검단이 행정개혁을 통한 재정 절감 6464억원, 재정개혁을 통한 재정 절감 7024억원을 총괄 관리토록 한 것은 전략상 중요한 관리 구도를 설계한 것으로 평가된다.

넷째, 정책 보고서에서는 부동산 매각도 권유했지만 이번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오로지 기존 세출구조개혁과 세입 확보를 통해 1조3000억원을 확보한 것이다. 한국 재정관리개혁의 이정표를 세운 성과로 평가된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지방정부가 채무 제로를 추구할 필요는 없다. 미래 세대에도 혜택이 되는 장기 사업이라면 채무를 유발해서 현 세대와 미래 세대가 부담을 나누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경상남도 사례는 채무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무책임과 무능력에 대한 경고란 의미에서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재정만능주의가 아니라 재정개혁도 업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노력은 확대돼야 한다. ‘채무 제로 백서’라도 발간해 다른 지자체에 보급하는 것도 의미 있다. 무엇보다 이제부터 재정 효율화를 위한 노력, 재정 책임성을 강화하는 노력이 시작돼야 한다. 이번 행사를 마치고 개혁의 지속성을 약속한다는 의미에서 도 청사 앞에 사과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정치적 의지만으로 이 사과나무를 지킬 수는 없다. 재정 책임에 관한 조례 또는 재정 효율화를 위한 조례를 제정할 필요가 있다. 경남발(發) 채무 제로의 재정개혁은 이제 2단계 실험을 시작해야 한다.

이원희 < 한경대 교수·행정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