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자 남부 국경에 집결한 이스라엘군 > 이스라엘군 전차와 장갑차가 5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국경 주변에 집결해 진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 가자 남부 국경에 집결한 이스라엘군 > 이스라엘군 전차와 장갑차가 5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국경 주변에 집결해 진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피란민이 몰린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지역에 민간인 대피·소개령을 내렸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휴전을 거부해 라파를 공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도 미국에 통보했다. 이스라엘군의 작전 개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규모 공습·지상전 임박

대피령 내린 이스라엘, 가자 라파 지상戰 임박…유가 또 불안
6일 하레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이날 라디오 방송과 SNS 등을 통해 라파 주민들에게 “가자지구 해안과 후방 지역에 ‘인도주의 구역’을 확대한다”며 대피를 촉구했다.

아비하이 아드라이 이스라엘군 아랍어 대변인은 “인도주의 구역에는 야전 병원과 텐트촌, 식량과 물, 의약품 등이 구비돼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군은 항공기로 이 같은 전단지를 뿌렸고, 현장에서 활동 중인 구호 단체에도 관련 정보를 전달했다. 가자 남부 최대 도시 칸유니스 인근에 약 5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난민 텐트촌을 조성한 사실도 위성사진 등을 통해 확인됐다. 이스라엘 정부는 미국에 라파 공격 계획을 통보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전날 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한 전화 통화에서 라파 공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라파에는 140만 명가량의 피란민이 머물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인명 피해 등을 우려해 이스라엘군을 만류했지만 이스라엘은 인질을 구출하고 안보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라파 공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해왔다. 이스라엘군은 라파에 무장대원 수천 명 규모의 하마스 네 개 대대가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전날 하마스가 라파 인근 국경검문소에 로켓을 발사해 이스라엘군 세 명이 숨졌다. 갈란트 장관은 “하마스가 휴전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곧 라파에서 군사 작전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이 전날 라파를 보복 공습해 16명이 숨진 데 이어 이날 대피령이 내려진 라파 동부 두 개 지역에도 공습이 이어졌다. 이집트는 이스라엘의 군사작전 시 피란민의 대량 유입에 대비해 라파와 접한 시나이반도 북부의 경계 태세를 격상했다.

평행선 달린 휴전 협상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협상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마스는 지난 4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미국, 이집트, 카이로의 중재로 진행된 협상에서 이스라엘에 지상군 즉각 철수와 종전을 요구했다.

하마스 정치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예는 성명에서 “전쟁 종료와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철수를 포함한 포괄적인 휴전을 원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스라엘은 중재국을 통해 인질 33명을 돌려받는 대신 팔레스타인 수감자 900명을 석방하고 40일간 휴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날 내각회의에서 “전쟁을 끝내라는 하마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끔찍한 패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괴멸시키진 못하더라도 라파를 공격해 적어도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무장 세력을 축출하겠다는 방침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전날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추모식 연설에서 “홀로코스트 당시 세계 지도자들이 방관했고, 어떤 나라도 우리를 돕지 않았다”며 “이스라엘은 승리할 때까지 싸울 것이며 홀로 서야 한다면 홀로 설 것”이라고 말했다.

중동 정세 불안, 유가 상승 우려

이스라엘군의 라파 공격이 임박하면서 중동 지역의 정세 불안도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에 협력하는 이집트와 요르단 등의 상황을 설명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 대중의 적대감과 불만이 지도자와 정권으로 향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도 이스라엘에 확전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미 정부는 지난주 이스라엘로 보내려던 탄약 선적을 보류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에 지원하려고 하던 무기 운송을 보류한 것은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이후 처음이라고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전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 1일 이스라엘을 방문해 라파 공격 문제를 놓고 네타냐후 총리와 논의했으나 네타냐후 총리가 라파 공격 입장을 굽히지 않아 서로 평행선을 달렸다.

이스라엘군의 라파 공격으로 중동 정세가 불안정해지면 유가가 급등할 수 있다. 이날 오후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78.77달러로 전날보다 0.84% 상승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