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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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하루 앞둔 12일 서울 곳곳에서 만난 ‘보수 표심(票心)’은 흔들리고 있었다. ‘태극기 부대’의 단골 모임 장소로 알려져 있는 탑골공원에서조차 “자유한국당은 서민의 마음을 모르는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강남의 은행·증권사 프라이빗뱅킹(PB) 담당자들은 “거액 자산가들이 선뜻 한국당 지지를 안 하는 건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보수의) 씨를 말릴 수는 없지 않나”라는 기류도 엿보였다. 한국당이 ‘샤이 보수’를 얼마나 흡수하느냐에 따라 막판 반전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국당 “보수 살려달라” 읍소

한국당은 이날 홍준표 대표 등 지도부가 총출동해 “보수를 살려달라”고 동정표를 구했다. 홍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 한국당이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막판 역전을 기대하며 ‘샤이 보수’층을 끌어들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지난 6~7일 시행한 사전투표에서 ‘보수 텃밭’으로 불리는 대구(16.43%)와 부산(17.16%)의 투표율은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보수층이 투표 참여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자칭 ‘청년 보수’라고 소개한 서울대 대학원생 전모씨(26)는 “전문가와 노력한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가 정의롭다고 생각하고, 더불어민주당식의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은 단호히 반대한다”면서도 “이번 선거에서 찍어줄 만한 당이 없다”고 토로했다.

종로에서 도장열쇠가게를 하는 김모씨(56·여)도 “마음에 드는 당도, 사람도 없어 아직도 헷갈린다”고 했다. “어차피 공약은 잘 안 보게 되고, 새롭고 참신한 사람이 나오면 찍는데 이번엔 그런 인물이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강남의 자산가들 역시 ‘샤이 보수’ 대열에 합류하는 듯했다. ‘큰손’들이 주요 고객인 투자자문사를 운영 중인 허모씨(63)는 “혁신과 개혁이라는 키워드를 좌파에 몽땅 뺏긴 것이 실책”이라며 “기업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보수당을 지지해야겠지만 이번엔 투표장에 갈지 아직 마음을 못 정했다”고 말했다.

◆‘네거티브 선거’ 경기도 부동층 늘어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불륜설’이 불거지면서 경기지사 선거 역시 부동층이 갈수록 많아지는 분위기다. 판교에 거주하며 서울에서 사업하고 있는 벤처기업인 A씨는 “이 후보가 성남시장 시절 워낙 도정을 명쾌하게 했고, 전임 시장에 비해 훨씬 청렴해 많은 시민이 이 후보를 지지했다”며 “여배우와의 불륜설이 나오는 바람에 같이 살고 있는 부모님은 누구한테 투표해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경기 판세가 뒤집어지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일방독주하는 대통령에 이어 지방자치단체 권력까지 내주는 것은 독재의 서막을 여는 것”이라며 “현명한 우리 국민이 견제와 균형을 이뤄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흔들리는 보수층을 잡기 위해 권력 견제 심리에 기대는 모양새다.

보수층의 민심이 차갑게 식어 있는 터라 투표 포기가 속출할 수 있다는 점은 한국당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다. 광화문에서 인쇄점을 운영하는 심형순 씨(69)는 “한국당에 너무 많이 실망했다”며 “지난 10년간 국민 생각은 안 하고 너무 해 먹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30년 넘게 장사했는데 갈수록 힘들다”며 “민주당이라고 뾰족한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투표 대상을 한번 바꿔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을 내세워 현 정부의 경제 실정을 부각하고 있는 한국당에 대해선 “안 믿는다”는 말이 돌아왔다. 염천교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변철석 씨(56)는 “진짜로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면 한국당을 지지하겠다”며 “선거 때만 되면 애원하고 끝나면 본체만체하면서 서로 싸우는 일이 만날 똑같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박동휘/황정환/임락근/노유정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