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시중은행 창구에서 소비자가 대출 상담을 받고 있다.   한경DB
서울의 한 시중은행 창구에서 소비자가 대출 상담을 받고 있다. 한경DB
“이건 사람들이 대면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임현우의 Fin토크] 비대면은 금융의 '만능 키' 아니다
지난달 100% 비대면 주택담보대출을 출시한 카카오뱅크가 2년 전 상품 기획을 시작하면서 가장 오랫동안 고민한 질문이었다고 한다. 서류가 복잡하고 금액이 큰 주택담보대출 특성상 창구 직원의 도움을 받길 원하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지점을 둘 수 없는 카카오뱅크는 이 문제를 챗봇(채팅 로봇)으로 풀었다. “사람이 주는 신뢰감과 안정감을 완벽하게 구현하긴 어렵더라도 사람 냄새 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백희정 주택담보대출 서비스셀 팀장)는 설명이다. 비대면의 힘으로 파죽지세 성장을 이어온 카카오뱅크지만, 비대면이 핸디캡이 될 때도 있다.

최근 국민은행이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나인 투 식스(9 to 6)’ 지점을 전국 72곳으로 늘렸다. 비대면 거래가 증가하고 있지만 자산 관리나 대출 업무는 대면으로 처리하려는 수요가 많아서라고 한다. 은행마다 수익이 나지 않는 점포를 정리하지 못해 난리인데, 이런 탄력점포는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매력 포인트’가 되고 있다. 행원들도 오전·오후 조로 나눠 유연근무를 할 수 있으니 나쁘지만은 않다. 금융권에서 디지털 전략이 비교적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국민은행이 “시중은행만이 갖고 있는 대면 채널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한 것이 인상적이다.

'MAU 전쟁' 핀테크가 앞서지만

플랫폼 경쟁에서는 일단 이용자가 많아야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금융 분야에서 전통 은행과 핀테크 기업 간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아이지네트웍스 집계를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 토스의 월간 이용자 수(MAU)는 1년 새 33% 늘어 1397만 명에 달했다. 카카오뱅크는 21% 급증한 1317만 명을 찍었다. 반면 국민은행은 1036만 명, 신한은행은 948만 명을 기록했고 증가율도 10%대에 그쳤다.

핀테크 기업은 매출, 이익, 자산보다 MAU를 늘리는 데 목숨을 걸고 뛴다. 은행들이 쉽게 추월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핀테크 기업이 영역을 확장할수록 기존 금융회사가 ‘비교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영역도 하나씩 확인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볼 만하다.

토스는 4년 전 토스인슈어런스라는 보험 판매회사를 세워 앱과 텔레마케팅(TM)으로만 영업했다. 정규직 TM 직원이 실적 압박 없이 보험을 팔게 함으로써 업계 관행을 혁신해보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한 보험대리점(GA) 설계사 200명을 통째로 스카우트하고, 대면 영업에 집중하는 쪽으로 전략을 완전히 뒤집었다. 보험업계는 “토스가 생각한 비대면 방식으론 도저히 실적을 올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바람직하다고 할 순 없지만 보험은 ‘푸시(push) 영업’으로 돌아가는 시장이다.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소비자가 거의 없고, 설계사가 얼굴을 맞대고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계약이 성사된다. 온라인 영업을 어떻게 활성화할지는 대형 보험사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오랜 숙제다. 토스도 다시 똑같은 출발선상에 서서 고민하는 입장이 됐다.

전통은행은 친숙함·신뢰도 '우위'

미국 JD파워는 자동차 평가로 유명하지만 금융을 비롯한 10여 개 분야에서도 소비자 조사를 벌인다. 올해 JD파워가 현지 중소기업 가맹점을 대상으로 결제 서비스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는 ‘전통 은행의 대약진’으로 요약된다. 지난해 3위였던 뱅크오브아메리카가 1위로 뛰어올랐고, JP모간은 5위에서 2위, 웰스파고는 9위에서 5위가 됐다. 반면 지난해 1, 2위를 나란히 꿰찼던 스퀘어와 페이팔은 3, 4위로 밀려났다.

대형 은행이 수수료 구조 단순화, 정산기일 단축 등 서비스를 강화한 결과로 분석됐다. 특히 정보기술(IT) 부문에 대대적으로 투자해 핀테크 기업과의 격차를 많이 좁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전통 은행은 핀테크와의 경쟁에서 ‘약점의 보완’ 전략을 넘어 ‘장점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은행의 강점으로는 소비자 접점이 풍부한 데서 오는 친숙함, 개인정보 보호의 신뢰도, 안전하다는 믿음 등을 꼽았다. 수세에 몰린 듯했던 국내외 대형 은행이 반격에 시동을 걸었다. 핀테크와의 더 흥미로운 경쟁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