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이 발표됐지만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 예년 같으면 3.1% 성장, 취업자수 35만 명 증가를 예상한 근거를 대보라고 문제 제기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 임기는 고작 넉 달여 남은 데다, 퇴행적 선거판이 현안을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이런 판국에 안이하고 타성적인 새해 전망의 현실성과 효용성을 따져봤자다.

그나마 주목되는 것은 정부가 판단한 리스크 요인이다. 기획재정부는 네 가지를 적시했다. 코로나 불확실성, 인플레이션 장기화, 신흥국 금융불안, 미·중 무역갈등 재개다. 동의할 만하다. 하지만 중요한 핵심 리스크가 빠졌다. 선거철에 더 실감 나는 한국적 정치 리스크다. 기재부가 이 문제를 알면서도 뺐다면 알맹이 없는 경제전망을 한 셈이다. 강경파가 주도하는 여당과 국회 우위의 정치 리스크를 수석 경제부처가 모를 리 없다.

균형을 잃은 것은 정부와 여당의 관계만이 아니다. 경제정책을 포함해 민·관의 모든 경제이슈가 정치에 마구 휘둘리는 게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경제는 과학이 아니라 정치”라는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경제가 시장원리에 따라 성장궤도에 오르지 못하는 판에 내년 전망을 백번 논의한들 무슨 소용인가.

재정은 물론 세제·금융까지 정치에 과도하게 휘둘린다. 갑자기 불거진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가 겉도는 와중에 또 ‘보유세 폭탄 1년 유예안’이 나왔다. 세제 백년대계는커녕 여권 내부의 입장 정리도 안 된 임기응변식 찔끔 감세안이 ‘누더기 세법’을 더욱 흔들어대는 꼴이다. 이 후보의 신용 대사면 주장도 마찬가지다. 저신용자 대책은 금융정책의 한 갈래이지만, 원칙 없는 사면이나 ‘고신용자 고금리 부담’ 같은 주장을 마구 내던질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저축과 신용 쌓기의 중요성은 초·중·고 때부터 가르쳐야 할 덕목이다. 금융조차 시혜적 복지로 여기면서 신용평가 시스템을 흔들겠다는 것도 전형적 ‘경제의 정치화’다.

이 후보는 최근 ‘전두환 경제 성과론’을 제기해 주목받았다. 그런 성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도 냉철히 본다면 더 주목받을 것이다. 경제만큼은 전문가 판단과 식견을 존중하고 따랐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경제를 정치에서 분리시킨 것이다.

정치논리를 배제할수록 경제는 발전하고 성장한다. 당장의 최대 현안인 인플레이션 대책부터 그렇다.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 통계에는 제대로 반영도 안 되는 전·월세 주거비 상승, 급등하는 수입·원자재 물가 문제에 정치적 계산을 앞세운다면 무슨 수로 지속가능한 해법을 찾을 수 있겠나. 수요·공급의 맥을 살피고, 시장의 역할에 주목하면서, 정부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구분할 때 대책도 나오는 법이다. 정치와 경제가 일체화된 계획경제의 말로가 어떠했나.

임기 말이어도 정부가 새해 경제정책방향을 내놓을 때는 정치리스크 경고 정도는 했어야 했다. ‘2022년은 경제도약을 위한 골든타임’이라는 식의 한가한 논평이나 내놓을 상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