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위원장이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하고 해고 금지, 부유세 도입, 대기업 총수 불법 이익 환수, 재벌 곳간 개방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4·15 총선이 ‘친노조 성향’인 여당의 압승으로 끝나자마자 마치 ‘빚 받을 게 있다’는 듯 정부와 경영계를 거세게 압박하는 모양새다.

코로나발(發) 경제쇼크가 확산일로인 상황에서 ‘국내 최대 노동자단체’임을 자랑하는 민노총이 위기 극복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중대 제안’이라며 제시한 해법이 조직이기주의에 기반한 저급한 주장으로 점철됐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 김 위원장은 “해고대란을 막는 가장 빠른 길은 해고 금지, 총고용 보장에 합의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이는 ‘해고를 안 하면 해고를 막을 수 있다’는 식의 허망한 주장에 불과하다.

‘고통 분담’을 외면하고 정부와 기업에 일방적 양보만을 요구하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적나라하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 주장이 대표적이다. 민노총은 자영업자·특수고용노동자 등으로 보험 대상을 확대하는 데 따른 위헌 논란 등에 대한 고민과 대안 없이 기업의 기여 확대, 정부의 재정투입만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내유보금 과세, 재벌 총수 불법이익 환수, 재벌의 총고용보장기금 조성 등 약탈적 방식을 도입하라고 요구한다. ‘수천조원’ 이라는 기업 사내유보금은 기(旣)투자액이 포함된 허수일 뿐이며, 불법이 있다면 재벌 총수도 예외없이 합당한 처벌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부적절한 제안이다. 재벌 곳간을 털자는 주장은 명백히 반(反)헌법적이다.

기존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줄곧 거부해 온 민노총이 노·정 또는 노·사·정 ‘비상협의’라는 새 틀을 제안하고 나선 점도 우려를 더한다. 사용자와 전문가를 배제하고 표 계산에 약하게 마련인 정부와 직거래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감지된다. ‘경제살리기 비상협의’를 제의하는 자리에서 전국 동시다발 노동절 집회, 전국 노동자대회 등의 파업계획을 줄줄이 내놓은 대목도 진의를 의심하게 만든다.

더 걱정되는 것은 민노총의 억지 주장에 끌려가는 듯한 정부 태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4·19 기념사에서 “노사합의를 통해 고용을 유지한 기업을 먼저 지원할 것”이라며 민노총 제안에 동조하는 듯한 입장을 표명했다. 정세균 국무총리 역시 지난 주말 김 위원장을 이례적으로 3시간 가까이 면담하며 힘을 실어줬다.

노동시장 최상층 기득권 노조의 정부와 기업에 대한 부당한 압박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선거 직전에는 한국노총이 더불어민주당과 정책 협약을 맺는 자리에서 “배신하면 후과를 감당 못 할 것”이라고 위협하더니, 민노총이 바통을 이어받은 모습이다. 국난 극복에 필요한 고통분담과 양보는커녕 끝없이 요구만 한다면 코로나 사태로 고통받는 국민의 인내도 한계에 이르고 말 것이다. 노동계는 사회적 대화를 빙자한 실력 행사를 자제하고, 정부는 균형잡힌 노사관계를 바로 세우는 것이 경제위기 탈출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