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과 암호화폐 등을 통해 자산을 불린 ‘2030세대 영리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17일 서울 테헤란로 업비트 라운지 전광판에 코인 시세가 나오고 있다.  /최혁 기자
주식과 암호화폐 등을 통해 자산을 불린 ‘2030세대 영리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17일 서울 테헤란로 업비트 라운지 전광판에 코인 시세가 나오고 있다. /최혁 기자
지난달 시중은행은 2030세대 자산가를 위한 전용 VIP 프로그램을 일제히 선보였다. 급증하는 ‘영리치’ 고객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돈을 좇는’ 시중은행이 영리치 공략에 나선 것은 자산 관리에 눈뜬 젊은 부자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탄탄한 자금과 적극적인 투자 의지를 갖춘 영리치가 자산관리(WM) 시장의 큰손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들의 존재감이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러스트=추덕영기자
일러스트=추덕영기자

○가상자산 투자·창업으로 자수성가

시중은행과 거래하는 영리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와 저금리가 맞물린 2020년부터 주식으로 큰돈을 번 2030세대 자산가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랠리에 단숨에 고액 자산가로 거듭난 이들도 적지 않다. 젊은 창업가들도 잇따라 기업공개(IPO)에 성공하며 막대한 부(富)를 쌓았다.

한국경제신문이 국민 신한 하나 농협 등 국내 4개 은행 고객을 분석한 결과 5억원 이상 금융자산을 보유한 고객은 2019년 5514명에서 올 4월 말 6659명으로 20.8% 불어났다. 하나은행 자산관리그룹 관계자는 “20대는 가상자산 투자로, 30대는 창업 이후 지분 매각 등을 통해 자산을 쌓은 ‘자수성가형 영리치’가 많다”며 “시드 머니가 많지 않더라도 자본시장에 대한 수준 높은 지식과 과감한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적극적 자산가들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5억원 이상 10억원 미만 자산가의 평균 금융 자산은 6억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10억원 이상 고객의 평균 자산은 30억원에 달했다. 특히 A은행은 20대 평균 자산(31억7974만원)이 30대(30억9622만원)를 앞지른 것으로 집계됐다.

○자산관리 눈뜬 2030세대

은행을 찾는 영리치가 증가하는 것은 자산 관리에 눈을 뜬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임은순 국민은행 프라이빗뱅커(PB)는 “근래 PB센터를 직접 방문하는 워크인(walk-in) 영리치 고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고금리 시대에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벌어들인 뭉칫돈을 관리해야겠다는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축적한 자산을 관리하는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전통 자산인 부동산을 비롯해 절세 채권, 사모펀드, 지분 투자 등으로 자산 투자 영역을 넓히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 이미 영리치들은 큰손으로 자리 잡았다. 입지 좋은 상업용 부동산 투자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다. 이상희 신한은행 신한PIB강남센터 PB팀장은 “과거처럼 한 가지 자산에 몰빵하기보다 투자와 자산 방어에 적절히 자금을 배분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매물로 나온 한 온라인 패션 플랫폼의 지분을 영리치들이 나눠 매입하는 등 기관투자가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영리치 공략 나선 은행

영리치를 붙잡기 위한 은행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길게는 수십 년까지 거래할 수 있는 특급 고객을 선점할 수 있어서다. 하나은행은 올해 처음으로 ‘하나 미래 리더스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2030세대 영리치만을 위한 전용 프로그램이다.

신한은행은 지난달 ‘신한 넥스트 리더스 프로그램’을 처음 선보였다. 가입 대상은 1984년 이후 출생자다. 신한은행은 향후 기업을 이끌 미래 경영인과 젊은 우수 고객에게 경영 전략, 승계, 세무, 리더십 등 전문가 초청 강연을 제공할 계획이다.

박재원/정의진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