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는 당나라 시인 두보가 지은 '곡강시(曲江詩)'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이 70세까지 사는 것은 드문 일이란 뜻이다. 두보도 70세까지 살지 못하고 58세에 세상을 떠났으나 당시로서는 그리 짧은 생은 아니었다. 오랜 인류 역사에서 평균수명이 50세를 넘은 것은 불과 100여년 전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15~18세기 프랑스인 평균수명은 25세 안팎이었고 19세기 말 서유럽인의 수명은 37세에 불과했다고 한다. 20세기 초만 해도 미국인의 수명은 평균 45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용선 한림대 교수가 묘비들을 분석해 보니 고려시대 귀족은 평균 39.7세,임금은 42.3세까지 살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백성들의 수명은 그보다 훨씬 짧았을 게 틀림없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을 처음 측정했던 1926년에도 33.7세에 불과했다.

지난 100여년 동안 수명이 부쩍 길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의학 발전 덕분이다. 치명적인 전염병을 막을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된데다 뇌졸중 심장병 같은 중병의 치료법과 예방 프로그램이 나왔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미국 신생아의 사망률은 15%에 가까웠으나 최근엔 1% 미만으로 급감한 것만 봐도 이 기간 수명연장이 얼마나 극적으로 이뤄졌는지를 알 수 있다.

미국과 일본에서 2000년 이후 태어난 아기들의 반 이상이 90세 이상,10% 정도는 100세 이상까지 살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왔다. 한국도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태어난 아이의 기대수명이 80.1세(남아 76.5세,여아 83.3세)라는 통계청의 '2008년 한국인 생명표'만 봐도 그렇다. 1970년 한국인 기대수명은 61.9세였으니 38년 만에 20년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970년 이후 기대수명 증가 속도는 터키를 제외하고 한국이 가장 빠르다.

문제는 수명이 늘어난다고 좋아할 수만은 없다는 데 있다. 상당수가 50세 전후에 은퇴하는 요즘 풍토에서는 긴 여생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가느냐가 간단치 않은 탓이다. 이곳저곳 아픈 데는 많은 반면 특별히 할 일도,벌어 놓은 돈도 없는 노후는 스산하고 괴로울 뿐이다. 이렇다 보니 대책없는 수명연장은 재앙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장수(長壽)의 역설이라고 할 만하다. 단순히 오래 연명하는 것 보다는 건강하고 의미 있게 사는 게 관건인 것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