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금채(산업은행 발행 채권)같은 안전자산을 편입하려면 왜 어렵게 채권시장안정펀드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채권시장 관계자의 한탄이다. 지난해 12월17일 채권시장을 안정시킨다며 자금 사정이 어려웠던 은행 등 금융사를 닥달해 어렵사리 출범한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는 원래 시장에서 소화가 안 되는 여신전문사나 캐피털사,신용카드사의 채권이나 일반 회사채 등을 사들이기 위해 고안됐다.

그러나 현재 채안펀드의 운용 내역을 보면 설립 취지가 무엇인지 헷갈린다. 5조원 규모로 출범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현재 매입 규모는 6200억원으로 4조원 이상이 부동자금 상태다. 그나마 올 들어 매수한 규모는 1100억원에 불과하다.

운용처를 보면 프라이머리 담보부증권(P-CBO)이 3400억원이고 은행채를 2000억원어치나 사들였다. 지난 19일엔 산금채를 500억원어치나 매입했다. 3년만기 국고채 대비 산금채의 신용스프레드는 지난해 12월 초 260bp(1bp=0.01%포인트)에서 최근 100bp 밑으로 떨어졌다. 채안펀드가 아니라도 시장수요가 넘쳐나고 있다는 뜻이다. 여전채(여신전문금융사 채권)의 경우엔 편입액이 800억원에 그친다. 운용을 맡은 산은자산운용 관계자는 "하위 펀드인 은행채 펀드는 종목별 편입비율을 최대 20%로 제한하고 있어 최소 다섯 종목의 은행채를 사야 한다"며 "지난해 말 후순위채를 대거 발행한 시중은행들이 최근 발행을 안 해 산금채를 먼저 사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소극적인 운용은 출범 때부터 예상됐던 바다. 채권시장의 어려움을 덜자고 만든 펀드인데도 운용처를 신용등급 AA 이상 '초우량'채권에 한정했다. 시장에서 소화가 안되는 채권은 A등급,BBB등급인데 원칙적으로 여기에 투자할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비난이 커지자 채안펀드는 이달 말까지 A~BBB등급의 회사채와 여전채,건설 관련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등을 신용보증기금의 지원을 받아 유동화시킨 1조5000억~2조원 규모의 자산담보부채권(ABS)을 편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최근 시장 상황이 나아지자 일부 여전사 등은 자체 신용으로 자금을 조달하겠다고 나서 실제 투자는 1조원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채안펀드는 그림의 떡"이란 모 카드사 관계자의 말이 떠오른다.

김현석 경제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