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제해야 한다 ]

최정표 < 건국대 교수 >

지주회사는 생산활동은 하지 않고 타회사를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
이다.

큰 지주회사는 수백개까지의 자회사를 거느리는 경우도 있다.

말하자면 한 개인 또는 가문이 가장 적은 자본으로 가장 많은 회사를
지배할 수 있는 제도가 바로 지주회사다.

2차대전 이전의 일본 경제는 재벌로 대변되는 경제체제였는데, 이런 재벌은
본사라고 불리는 지주회사에 의해 유지되었다.

예컨대 미쓰이가문은 미쓰이 본사라고 불리는 지주회사를 만들어 60%이상의
주식을 직접 소유하고, 미쓰이 본사는 다시 3백여개의 큰 기업을 자회사 또는
손자회사로 거느렸다.

그러므로 미쓰이 가문은 3백개가 넘는 계열회사를 거느리는 재벌을 만들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지주회사는 재벌제도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일본은 타의(연합군)에 의한 것이긴 했지만 패망과 더불어 재벌을 해체하고
소유와 경영이 완전히 불리된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 경제부흥을 이룩해 냈다.

재벌해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추진된 것이 바로 지주회사의 해체였다.

그 이후 일본에서는 지주회사의 설립이 금지되었다.

재벌을 만드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 최근에 와서야 지주회사의
설립을 부분적으로 허용하게 됐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 2차대전 이전의 일본에 존재했던 것과 비슷한
형태의 재벌이 존재하고 있다.

가족 중심의 전근대적 기업형태인 재벌이 우리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재벌들이 더 큰 재벌을 만들고 이를 용이하게 세습시킬 수 있는
장치가 바로 지주회사이다.

지주회사는 재벌제도를 영속화시키고 고착화시키는 제도이다.

한 가문이 지주회사를 소유하면서 이 지주회사가 수많은 자회사 및 손자
회사를 거느리면 이것은 가장 탄탄한 재벌이 되면서 쉽게 대물림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경제를 가장 확실하게 재벌경제로 만드는 길이다.

재벌기업들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선진국형의 전문경영인 지배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전에는 지주회사를 허용해서는 안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