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이 어느새 원앙을 침대에 눕히며 원앙의 몸위에 자기 몸을
실었다.

원앙은 약하게 신음소리만 낼뿐 여전히 보옥을 뿌리치지 않았다.

"넌 목이 참 예쁘구나"

보옥이 또 한번 손으로 원앙의 목을 쓰다듬어 보았다.

원앙이 간지러운지 고객를 한쪽으로 돌리면서 배시시 웃었다.

"네 입술에 바른 연지도 색깔이 곱구나. 냄새도 좋고. 연지 맛을
한번 보고 싶구나"

보옥이 입술을 앞으로 쑥 내밀어 원앙의 입술을 덮으려고 하였다.

이번에는 원앙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 보옥의 입술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듯 눈을 감은 채 가만이 있었다.

바로 그때 인기척이 나는가 싶더니 습인이 보옥의 옷을 챙겨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원앙의 태도가 돌변하였다.

"습인 언니! 날 좀 살려줘요. 도련님이 짓궂은 장난을 하려고 해요.
글쎄, 입술 연지를 빨아 먹고 싶대요"

그러면서 상체을 비틀어 보옥의 무에서 벗어났다.

보옥이 머쓱해진 얼굴로 침애에 걸터앉아 있자, 습인이 옷을 침대
머리말에 내려놓으며 보옥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제가 그렇게 부탁을 드렸는데도 아직까지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군요.

도련님이 정 그러신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어요"

보옥은 현장에서 들키고 만 꼴이 되었으므로 어떻게 변명할 말을
찾지도 못하고 원앙이 원망스러운듯 원앙을 흘끗흘끗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빨리 옷을 갈아입으시고 큰댁 대감님 병문안을 가셔야죠"

습인이 독촉을 하자 보옥이 마지못해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보옥이 대부인에게 가서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후리후리한 키에
갸름한 얼굴을 한 젊은이가 다가와 인사를 하였다.

뒤채에 살고 있는 가운이었다.

"어쩐 일이야?"

보옥이 반색을 하며 물었다.

"가련 아저씨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

가운이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슬그머니 뒤로 돌리며 말끝을 흐렸다.

보옥은 가운에게 다시 놀러오라는 말을 남기고 그와 헤어져 가사
대감댁으로 가고, 가운은 가련의 집으로 향했다.

가운이 가련의 집에 당도해보니 가련은 어디로 나갔는지 보이지 않고
희봉 혼자 있다가 가운을 맞았다.

가운은 희봉에게 들고 온 용뇌와 사향을 선물하고 문안 인사를 드렸다.

그러나 그것들을 선물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희봉 역시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질물도 하지 않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