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의 과도한 정부 부채가 경제 성장을 가로막고 재정위기를 확산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회원국이 제출한 내년도 재정계획안 검토 결과를 최근 공개했다.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재정담당 EU 집행위원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세 국가를 지목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다.

유로존의 통화정책은 유럽중앙은행(ECB)이 맡지만 재정정책은 회원국이 독자 운영한다. 다만 회원국의 재정 격차를 축소하고 재정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EU는 재정준칙을 시행하고 있다. 연간 재정적자는 GDP의 3% 이내, 정부 부채는 GDP의 60% 이하를 유지해야 한다.

집행위원회는 “프랑스 등 세 국가는 정부 부채를 줄일 수 있는 좋은 경제 상황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심지어 정부 부채를 줄이기 위한 의미있는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다”고 했다. EU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탈리아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134.8%에 달한다. 재정위기를 겪었던 그리스(181.2%)에 이어 EU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 프랑스(98.4%)와 스페인(98.6%)도 100%에 육박한다. EU는 올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GDP 대비 재정적자도 EU가 정한 ‘3% 룰’을 위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집행위원회는 독일과 네덜란드 등 재정 상태가 탄탄한 회원국들에는 경기 부양을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과 함께 유로존 4대 경제대국인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은 정부 지출을 줄여 공공 부채를 감축해야 한다는 게 EU의 지적이다. 그리스보다 경제 규모가 10배 이상 큰 세 국가의 재정위기가 불거지면 유로존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올 것으로 판단해서다.

하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 지출을 확대하는 등 확장적 재정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굽히지 않고 있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확장적 재정정책은 세계 경제 둔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라며 “EU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 초안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U는 최근 4년 새 네 번 총선을 치르는 등 정치 혼란을 겪고 있는 스페인의 재정위기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지난 10일 총선에서 1당 지위를 유지한 현 집권 여당인 사회민주당은 극좌 성향의 포데모스와 연정을 추진하고 있다. 포데모스는 반(反)긴축정책과 복지 확대를 내세우고 있어 공공부채 규모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