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 NOW
전남 영암에 있는 현대삼호중공업 조선소 도크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이중연료 추진 컨테이너선에 LNG 연료탱크를 탑재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 제공
전남 영암에 있는 현대삼호중공업 조선소 도크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이중연료 추진 컨테이너선에 LNG 연료탱크를 탑재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 제공
건조를 마치고 내장 작업을 시작한 액화천연가스(LNG) 이중연료 추진 컨테이너선의 연료공급실에 들어가자 거대한 은빛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영하 163℃ 이하의 극저온에서 액화되는 LNG를 담기 위해 특수 제작한 9% 니켈강으로 만든 1만2000m3급 대형 연료탱크다. 탱크 위로는 LNG를 디젤 연료와 함께 엔진에 투입하기 위한 가스연료 공급 시스템(FGSS)이 줄지어 연결돼 있었다. 김용희 현대삼호중공업 책임엔지니어는 “기존 디젤엔진 대비 황산화물(SOx)과 질소산화물(NOx) 배출을 80~90% 줄이고, 이산화탄소(CO2)도 15% 이상 줄여주는 시스템”이라며 “성능의 안정성이 높아 선주들의 신뢰도가 높은 기술”이라고 말했다.

LNG부터 암모니아까지 친환경선 시장 휩쓸어

2021년 글로벌 조선·해운업계에선 친환경 이중연료 추진선에 대한 발주 소식이 이어졌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8월 세계 최대 해운사 머스크로부터 메탄올 이중연료 엔진을 탑재한 1만6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8척을 수주했다. 그간 이중연료 추진 시장의 대세였던 LNG가 아닌 새로운 대체 연료가 원양을 넘나드는 주력 선종으로 진출한 첫 사례다.

머스크의 메탄올 추진선 발주는 조선 경기를 좌우하는 글로벌 선사들의 친환경 건조 경쟁의 서막을 알렸다. 경쟁 선사들은 이에 질세라 친환경선 발주에 나섰다. 지난 1년간 이미 50여 척의 컨테이너선을 발주한 MSC는 LNG를 이중연료로 사용하는 1만5000TEU급 컨테이너선 6척의 추가 발주에 나섰다. CMA-CGM 역시 지난해 하반기 현대미포조선에 2000TEU급 컨테이너선 10척을 주문했다. 비용과 기술 문제로 LNG나 액화프로판가스(LPG) 등 가스 운반선 중심으로만 적용되던 이중연료 추진 시스템이 이젠 컨테이너, 탱커, 벌크 등 모든 선종에서 비중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중연료 추진선은 기존 선박 연료인 벙커C유와 LNG·LPG 같은 가스 연료를 함께 사용하는 선박을 말한다. 자동차로 치면 ‘하이브리드 엔진’이다.

선사들은 2023년부터 본격화하는 선박 환경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친환경선 발주를 늘리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08년 대비 선박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5년 최소 30% 이상, 2050년까지 70% 감축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2023년부터는 신조선이 아닌 운항 중인 선박에도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적용된다. 기존의 내연기관을 장착한 선박을 더 이상 바다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규제다.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발주한 1561척의 선박 중 35%가 이중연료 추진선이었다. 주요 글로벌 선사들이 거의 모든 신규 발주를 이중연료 추진선으로 채우면서 이 비중이 2025년이면 50% 이상으로 높아질 것이란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현대삼호중공업의 모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을 비롯해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소위 ‘빅 3’는 이 같은 변화의 최대 수혜자였다. 주력 선종인 1만2000TEU 이상급 대형 컨테이너선에서 이미 이 비중은 40%대로 높아졌다.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의 48%도 이중연료 추진 엔진을 탑재했다.

빅 3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발주된 친환경선 발주의 70%가량을 싹쓸이했다. LNG, LPG뿐 아니라 메탄올 등 새로운 연료를 쓰는 고부가가치 선박 대부분이 한국 조선소에 맡겨졌다. 김영환 현대삼호중공업 상무는 “신기술을 접목한 고가 선박은 일단 한국 조선소에 맡기는 것이 업계의 대세”라며 “한동안 이 같은 추세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거세지는 중국 ‘추격’…기술·생산 혁신으로 대응

하지만 한국 조선소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한국이 높은 기술적 성숙도를 달성한 LNG 이중연료 추진 엔진이 현재 친환경선 시장의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결국은 LNG조차도 화석연료라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중국, 일본 등 조선소들은 CO2 배출이 전혀 없는 암모니아 추진선 개발로 ‘일발역전’을 노리고 있다.

여전히 이중연료 추진 관련 원천기술을 해외에 의존하는 것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아직 극초기 단계인 수소를 제외하면 이미 상용화가 이뤄진 LNG, 메탄올, LPG부터 암모니아 추진까지 대부분의 대형 선박엔진 원천기술은 MAN, 바르질라 등 유럽 엔진 개발사들이 보유하고 있다. 한국 조선소 가운데 엔진을 자체 개발하는 곳은 현대중공업이 유일하다. 현대중공업의 주도로 암모니아와 수소연료 추진 시스템의 개발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추격자’ 위치라는 것이 업계의 냉정한 분석이다.

친환경선 발주량이 늘면서 낮은 인건비 부담으로 비용 경쟁력이 있는 중국 조선소들이 고난도의 대형 친환경선 건조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는 것도 위협 요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자국 발주를 통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빠르게 기술 격차를 줄이고 있다”며 “한국이 우위에 있는 LNG 운반선이나 이중연료 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 분야에서도 수주 소식을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 조선소들은 기술개발과 함께 수주 전략을 다변화하며 중국 조선소를 견제하고 나섰다. 한국조선해양은 낮은 선박 단가에도 전체 수주 물량의 20~30%를 이중연료 추진 탱커와 벌크선으로 채우고 있다. 비주력 선종이라도 수주 경쟁에 참여해 중국 조선소들의 수주 단가를 낮춰 독주를 막는 전략이다.

2010년대 중반 조선 침체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해외 생산 거점 재확보에도 나섰다. 한국조선해양은 베트남에 있는 계열사 현대베트남조선을 활용해 탱커, 벌크선 등 국내선 수익을 내기 힘든 비주력선종을 집중 생산해 중국 조선소를 견제하고 있다.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등과 합작사를 설립해 사우디 현지에 연간 40척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를 짓고 있다.
기술력으로 친환경선 시장 장악한 韓조선
기술력으로 친환경선 시장 장악한 韓조선
황정환 한국경제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