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는 2010년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바이오, 2차전지 등과 함께 5대 신수종 사업으로 낙점한 분야다. 이듬해 의료기기 업체 메디슨(현 삼성메디슨)을 인수할 때만 해도 의료기기가 삼성의 ‘미래 먹거리’가 될 거란 걸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거기까지였다. 반도체와 바이오, 배터리 등에 투자를 집중하느라 의료기기까지 키울 여력이 없었던 것. 삼성이 잘 아는 분야가 아니란 점과 지멘스헬스케어, GE헬스케어, 필립스 등 이 분야 최강자들이 쌓아놓은 벽이 높았던 것도 한몫했다.

이랬던 삼성이 다시 의료기기 사업을 키우기로 했다. 삼성이 잘 아는 인공지능(AI) 의료기기 기업 인수를 통해서다. 전문 인력과 기술을 확보해 미래 성장성이 큰 의료기기를 핵심사업으로 키우겠다는 포석이다.

○AI 진단 기술 확보…시너지 기대

AI 의료기기社 소니오 품은 삼성…"136조 시장 잡겠다"
삼성전자는 의료기기 자회사 삼성메디슨을 통해 프랑스의 초음파 AI 의료기기 스타트업 소니오 지분 100%를 1265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8일 밝혔다. 거래는 다음달 최종 마무리된다.

2020년 설립된 소니오는 산부인과 초음파 진단 소프트웨어(SW)를 개발한 회사다. 의사가 환자의 진단 이력 등을 정확하고 빠르게 확인하고 관리하는 데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8월 태아 상태 측정용 진단 단면을 자동 인식하는 산부인과용 AI 진단 SW ‘디텍트’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판매 승인을 받는 등 상당한 기술력을 갖춘 기업으로 통한다.

삼성은 소니오 인수로 AI 의료기기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메디슨의 주력 제품은 초음파 의료기기 ‘V7’, ‘V8’이다. 이 기기는 산부인과뿐 아니라 영상의학과, 정형외과 등 다양한 진료과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 제품에 소니오가 보유한 AI 진단 기술을 적용하면 초음파 판독 시 정확성과 속도가 높아지는 만큼 시간 및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게 삼성의 설명이다. 초음파는 화질 선명도가 떨어져 의료진이 판독 과정에서 실수할 가능성이 있는데, 소니오의 AI 기술로 비전문가라도 쉽고 정확한 판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미국 시장 공략 본격화

그동안 삼성의 의료기기 사업은 ‘아픈 손가락’이었다. 삼성이 인수한 뒤 세 차례나 연간 적자를 냈을 정도다. 삼성의 의료기기 사업은 삼성전자 내부 의료기기사업부와 삼성메디슨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의료기기 사업부는 영상진단기, 삼성메디슨은 초음파 진단기기를 맡고 있다. 의료기기 사업부를 2017년 별도 조직으로 분리했다가 2020년 다시 소비자가전 산하에 편입하자 세간엔 철수설이 돌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소니오를 인수한 건 의료기기에 AI를 접목하면 상당한 시장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 따르면 AI 중심 의료기기 시장 규모는 연평균 42%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7년엔 995억달러(약 136조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관측된다. 지멘스헬스케어, 필립스, GE헬스케어 등 글로벌 3대 기업이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삼성전자에도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삼성메디슨은 초음파 의료기기 시장 경쟁력을 키워 최대 시장인 북미 지역을 적극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삼성메디슨은 수출 비중이 90%에 이른다. 중국 등 아시아에서 40%로 비중이 가장 높고, 유럽은 30%를 차지한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