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이슈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에서 한 시민이 전광판 앞을 지나는 모습. 2024.1.17. 사진=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에서 한 시민이 전광판 앞을 지나는 모습. 2024.1.17.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탄소중립 이행을 점검하고 평가하는 지수와 금융상품이 쏟아지면서 녹색 전환이 지연되는 ‘기후 후진국’이 드러나고 있다. 한국은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녹색 전환 속도가 늦어 자본유출 우려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요 금융 정보 서비스업체는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 온실가스 감축 경로, 국민 1인당 탄소배출량, GDP 대비 탄소배출량 집약도 등 다양한 지표를 활용해 녹색 전환을 평가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주식, 채권 등을 연계한 지수 상품군을 출시하고 있다.

정부 녹색 전환 기울기 평가

블룸버그는 지난 4월 ‘정부 기후 경향 채권지수(Bloomberg Government Climate Tilted Bond Indices)’를 출시했다. 해당 지수군은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서두르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자 하는 투자자를 위해 마련됐다. 블룸버그는 기후변화 관련 시스템적 위험과 기회를 고려할 때 시장 유동성과 투자 집중 위험을 반영하는 벤치마크가 필요해 지수를 출시했다고 밝혔다.

해당 지수군은 투자자가 국가별 맞춤형 지수를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복수 국가 합계 배출량의 감소 궤적을 따라가는 개인화된 지수를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 블룸버그는 지수군 내에서 글로벌, 범유로, 신흥 시장, 인플레이션과 물가 연계 등으로 구분한 총 14개 개별 지수를 제공한다. 지수는 국가별 녹색 전환 수준을 상대평가하는 블룸버그 정부 기후 점수(GOVS)를 기반으로 산출된다. 평가 부문은 탄소 전환, 전력 전환, 기후 정책 3가지다.

탄소 전환은 주로 정부의 탄소감축 현황, 1인당 및 GDP 대비 탄소집약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등을 평가한다. 전력 부문은 화석연료, 재생에너지와 관련한 성과를 토대로 국가별 탈탄소화 진행 상황과 경로를 추적한다. 재생에너지와 청정에너지 투자, 석탄·풍력·태양광 부문 성장성, 재생에너지 발전량도 본다. 기후 정책은 국가 탄소중립 목표와 서약, 재생에너지 정책 등을 점검한다.

녹색 전환 지수 쏟아지는데…한국은 기후 후진국?


크리스 헤켈 블룸버그 지수 서비스 부문장은 “새롭게 출시된 블룸버그 정부 기후 경향 채권지수는 국가의 기후 약속에 대한 진전뿐 아니라 재생에너지 발전량에 대한 투자 전망치를 고려하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녹색 전환 수준을 평가해 포트폴리오에 포함하는 지수도 꾸준히 출시되고 있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지난해 3월 개별 기업이 파리기후변화협약의 목표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추적하는 ‘S&P 글로벌 넷제로 2050 기후 전환 ESG 지수’를 출시했다. 해당 지수에 포함된 한국 기업은 25곳으로,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4% 내외다.

감축 아닌 전환 평가 본격화

이처럼 최근 출시된 기후 지수는 개별 국가와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넘어 녹색 전환 경로를 추적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S&P, 블룸버그 외에도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 역시 2015년 파리협정 채택을 기점으로 녹색 전환 지수를 쏟아내고 있다.

녹색 전환 지수가 블랙록, 국내외 연기금 등 국제적 투자자가 전 세계 분산된 자산의 시스템적 기후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본을 재배치(리밸런싱)하는 측면에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MSCI가 국가와 산업의 녹색 전환 수준을 평가하는 지수를 서비스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나아가 MSCI와 서스테이널리틱스는 개별 기업의 전환 수준을 평가해 공개하고 있다. 양 사가 공개하는 내재 온도 상승(ITR) 지표는 기업의 탄소감축 경로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최소 2℃ 이내로 제한하는 목표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드러내는 대표적 지표다.

한국, 기후 후진국으로 분류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은 녹색 전환이 지연되는 기후 후진국으로 분류되어 자본유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후 경향 채권지수를 출시한 블룸버그는 자체 플랫폼 클라이밋 스코프를 통해 전 세계 140개국 중 한국의 재생에너지 관련 투자 매력도를 65위로 평가했다. 30개 선진국 중에서도 26위다.

이 밖에도 독일의 비정부 조직 저먼워치와 기후 연구단체 뉴클라이밋 연구소 등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기후변화대응지수(CCPI)를 통해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수준을 전체 67개국 중 64위라고 평가했다. CCPI에서 한국보다 낮은 평가를 받은 국가는 UAE와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3곳에 불과하다. CCPI는 한국 정부가 2030년 NDC를 수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감소하는 등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CCPI는 한국 정부가 석유와 가스에 공적 자급을 지원하는 점도 문제 삼았다.

정부 기후 정책을 평가하는 또 다른 연구기관 기후 행동 추적(CAT) 역시 한국 정부의 기후 목표와 정책이 매우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기후 정책과 약속이 파리협정의 기온 상승 제한 폭인 1.5°C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정책을 유지하면 최대 4℃에 이를 수 있으며,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3℃ 경로에 부합한다고 우려했다.

국내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녹색 전환을 평가하는 방법이 고도화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산출한 지수는 주로 국가 단위 또는 산업 단위의 변화를 동적으로 추적하며, 장기적으로 이러한 지수는 녹색 전환이 지연되는 국가의 자본 유출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