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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국내 출간 이후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도둑맞은 집중력>. 이 책은 저자 요한 하리가 미국 메사추세츠주 외딴마을 프로빈스타운으로 향하며 시작됩니다.

여행의 목표는 3개월간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는 것. 저널리스트로 매일 무수한 연락에 시달리며 살아온 하리는 잃어버린 집중력을 되찾으려 그에게 휴식과 단절을 제공할 공간을 찾아떠나요.
'무소유' 법정스님이 마지막까지 곁에 둔 책… '자연인들의 성경' 소로의 <월든>
하리가 프로빈스타운을 '틀어박힐 장소'로 점찍은 건 우연이 아닙니다. 미국 북동부의 땅끝마을, 기다랗고 초목이 우거진 모래톱. 이곳은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즐겨 찾던 곳이니까요.

소로의 <월든>은 흔히 '귀농인들의 성경'으로 불립니다. 도시 문명과 단절된 채 자연에 파묻혀 지내는 삶을 다뤘기 때문이죠. 간디와 톨스토이가 사랑한 책, '무소유'를 외쳤던 법정스님이 생전 마지막까지 곁에 뒀던 책으로도 유명합니다.
'무소유' 법정스님이 마지막까지 곁에 둔 책… '자연인들의 성경' 소로의 <월든>
소로는 메사추세츠주 월든 호숫가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1845년부터 1847년까지 2년 2개월 2일간 홀로 지냈습니다. 농사를 짓고 자급자족으로 생활을 꾸렸습니다. 그 경험을 담아 1854년 출간한 책이 <월든>이에요.

월든은 왜 외딴집으로 걸어들어갔을까요. 그는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나 자신이 의도한 대로 삶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앞에 두고 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스스로 인생의 가르침을 온전히 익힐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고, 죽음을 맞았을 때 내가 헛되이 살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삶이 너무 소중해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소로가 무정부주의자거나 모든 물질문명을 부정한 건 아니에요. <월든>은 우리 다함께 원시시대로 돌아가자고 쓴 책이 아닙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소로는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아버지가 세운 연필 공장에서 직접 연필을 개발하고 판매했던 사업가이자 공학자였어요. 형과 함께 사립 학교를 운영하며 교사로 지낸 경험도 있고요. 그는 <월든>에 '호밀가루 값 1달러 4.75센트' 하는 식으로 오두막에서의 수입과 지출을 꼼꼼하게 기록했습니다. 책에 월든 호수를 직접 측량한 축약도를 실었죠.

2년 2개월 2일간의 오두막 생활은 '실험'에 가깝습니다. 자신이 어디까지 자립할 수 있고 어디까지 버릴 수 있는지 확인하는. 나아가 이 실험은 소로 스스로에게 '나의 삶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나의 삶을 구성하는 건 뭔가' 하고 질문을 던집니다. 이런 질문은 일상에서 잊기 쉽죠. 소로는 말합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집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웃이 소유한 정도의 집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로는 기계에 업히듯 생각없이 일하는 삶, 생애를 흥청망청 낭비하는 삶이 아니라 "시적인 삶이나 신성한 삶을 영위할 정도로 깨어 있는" 삶을 꿈꿨습니다. 그러기 위해 삶의 본질에서 멀리 떨어진 사물과 인간관계를 자신에게서 치워버렸습니다.

소로는 "우리의 삶은 사소한 일로 낭비된다"며 "하루를 자연처럼 살아 보자"고 말합니다. 순간의 흐름에 휩쓸리는 대신에 삶의 정수를 바라볼 시간을 갖자는 거예요.

소로의 말들은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를 유행어처럼 외치는 21세기 한국에서는 영 요원한 일처럼 들리기도 해요. 그러나 "시간은 내가 낚싯줄을 내리는 강물일 뿐이다" 같은 문장들을 읽다보면 소로의 2년 2개월여의 오두막 생활을 간접체험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잔물결이 일고,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볼 때처럼 영혼이 정화되는 기분도 들고요. 번역가 정회성은 "<월든>은 이 시대의 쉼표 같은 책"이라고 말했어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오두막 생활. 이 시간들은 소로의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는 <월든>에 앞서 1849년 <시민 불복종>을 출간했습니다. 국가나 법이 정의롭지 못할 때 시민은 이를 거부할 수 있다고 주창한 역사적 고전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고민하며 홀로 사색하던 시간이 쌓여 빚어낸 역작이었어요.

이후 소로는 1862년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기 직전 오랜 친구가 찾아오자 소로는 말했습니다. "이곳은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나는 곧 더 나은 세상을 보게 될 거야. 나는 자연을 너무나 사랑해왔으니까."




참고 자료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정회성 옮김, <월든>, 민음사
-휴스턴대와 KUHF가 제작한 라디오 프로그램 '우리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엔진'(THE ENGINES OF OUR INGENUITY) 중 '소로의 연필'
-뉴욕타임스, 2021년 10월 14일, '소로가 주는 건설적 고독의 교훈(Lessons in Constructive Solitude From Thoreau)'
-뉴욕타임스, 2017년 7월 12일, '소로의 200번째 생일에, 새로운 전기가 그를 원칙주의자로 묘사하다(On Thoreau’s 200th Birthday, a New Biography Pictures Him as a Man of Principle)'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