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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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러스터(industrial cluster)란 산업직접지라고 해석됩니다. 유사 업종에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기업, 기관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을 말합니다. 클러스터에는 직접 생산을 담당하는 기업만 아니라 연구개발 기능을 담당하는 대학, 연구소와 각종 지원 기능을 가진 벤처캐피털, 컨설팅회사 등의 조직이 한 곳에 모이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정보와 지식 공유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노릴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클러스터 모델로는 미국의 IT사업을 주도하는 실리콘밸리, 국내에도 이를 벤치마킹한 테헤란 밸리가 있습니다.

지난 7월 20일 정부가 핵심전략 산업인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초 격차 확보를 위해 세계 최대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 예정된 경기 용인 등 7곳에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를 지정했습니다. 정부는 기반시설 우선 구축,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인허가 타임아웃제 도입 등 전방위 지원으로 600조원대로 예상되는 민간 투자를 적기에 끌어내 3대 전략산업의 초 격차 혁신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방침입니다.

AI가 세상을 지배할지도 모르는 판국에 이런 산업단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 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클러스터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인천 송도가 최종 후보지로 선정된 K바이오랩허브의 경우에도 미국 보스턴의 바이오 스타트업 지원기관인 ‘랩 센트럴(Lab Central)’을 벤치마킹한 사례입니다.
기업에는 물어봤나?…반도체 특화단지에 대한 유감[심형석의 부동산정석]
이런 산업단지가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에 비해 더 커졌습니다. 미국에서 주택가격이 가장 높은 곳은 맨하튼(Manhattan)이 아니고 애서튼(Atherton)입니다. ‘프로퍼티 샤크(Property Shark)’라는 미국의 부동산정보업체가 2022년 조사한 자료인데 6년연속 1위는 애서튼입니다. 애서튼에서 거래된 주택 실거래가의 중간가격은 790만달러(약 102억원)에 달했습니다. 애서튼은 실리콘밸리 교외 부촌으로 IT 업종 집적에 따른 가장 큰 수혜를 받는 지역입니다. 애서튼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바로 미래의 고급 일자리입니다.

미래의 일자리인 게임, IT, 바이오가 세계 경제를 선도할 뿐 아니라 집 값 또한 좌지우지하는 중입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래의 주택가격은 고급 일자리에 의해 좌우될 겁니다. 직주근접이 미래 주택가격의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정부에서 발표한 첨단전략산업의 특화단지(cluster)는 향후 주택가격을 예측하는데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대규모 개발사업의 사업대상지를 선정하는 방식과 절차입니다. 이번 특화단지의 경우 총 21개 지역이 신청했다고 합니다. 선도기업 유무, 신규투자 계획, 산업 생태계 발전 가능성, 지역균형발전 등이 중점 평가 요소입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특화단지에 입점할 기업의 의견을 들어서 평가한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대규모 개발사업의 핵심인 키 테넌트(key tenant)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이런 국가차원의 대형 개발사업을 선정했다는 겁니다.
기업에는 물어봤나?…반도체 특화단지에 대한 유감[심형석의 부동산정석]
정부에서는 매번 같은 형태의 방식과 절차가 진행됩니다. 신공항 사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 지역에 신공항을 선정할까를 고민할 때 가장 먼저 그리고 중요하게 평가해야 할 변수는 항공사들의 의견입니다. 여기에 공항을 건설하면 당신 항공사는 취항을 하겠느냐 이외의 변수는 모두 부차적일 따름입니다. 취항하는 항공사가 없어 대부분의 지방공항이 고추나 말리고 있는 현실은 잘못된 타당성조사의 크나큰 폐해일 따름입니다.

같은 사업을 민간에서 한다면 시장성(marketability) 분석을 철저히 합니다. 시장성이란 개발된 부동산이 현재나 미래의 시장 상황에서 매매나 임대될 수 있는 가능성의 정도를 조사하는 과정입니다. 당연히 고객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기업이 시장의 크기를 측정하고 시장의 특성을 판단하는 단순한 시장조사(market analysis)는 기업위주의 분석일 따름입니다.

아직도 시장분석과 시장성분석을 구분하지 못하니 답답합니다. 이런 대규모 국책사업이 특화단지의 고객인 기업의 입장을 얼마만큼 배려했는지 의문입니다. 정부가 만들면 기업은 무조건 들어올 것이라는 사고는 개발 전성시대의 착각일 뿐입니다. 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전에 관련 기업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어떤 조건을 원하는지 다시한번 확인해봤으면 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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