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이슈 브리핑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전경. 사진 : 한국경제신문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전경. 사진 : 한국경제신문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거래 증권사 선정 평가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평가 배점 비중을 2배로 늘려 중소 증권사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평가를 잘 받으려면 ESG 관련 보고서를 발간하고 ESG 경영 정보도 공개해야 하기에 비용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부 중소 증권사는 국민연금과의 거래가 B2B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해 선정 평가에서 탈락하면 경영에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국민연금이 내년 상반기부터 국내 주식거래 증권사 수를 줄이기로 예고한 터라 국민연금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은 매년 두 차례 주식거래 증권사를 선정해 국내 주식을 매매한다. 100점 만점 중 85점은 정량 평가, 15점은 정성 평가다. 정량 평가 항목은 재무 안전성, 감독기관 조치 사항, 리서치 능력, 수수료, 책임투자 및 ESG 경영 등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6월 1일 국내 주식 일반 거래 증권사 평가에서 5점을 배점한 ‘책임투자 및 사회적책임’ 항목을 ‘책임투자 및 ESG 경영’으로 변경하고 10점을 배점했다. 기존 사회 공헌 활동에 초점을 맞추던 평가 항목을 ESG에 맞게 수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해당 변경 내역은 내년 상반기 선정 평가에 반영된다.

국민연금, 증권사 평가에서 ESG 배점 늘린다


책임투자 및 ESG 경영 항목 세부 평가 기준을 보면, 책임투자 보고서가 4점, ESG 경영이 6점이다. 책임투자 보고서는 ESG 관련 보고서 발간 건수를 평가하고, ESG 경영은 증권사의 환경·사회·지배구조·정보공개를 평가한다.

100점 만점에 불과 5점이 늘어났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평가에서 5점은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 업계 반응이다. 국민연금은 선정 평가 결과에 따라 거래 증권사 등급을 1·2·3등급으로 나누는데, 각 등급에 따라 약정액 규모에 차이가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약정액 규모는 증권사 수수료 이익을 결정하기에 중요한데, 1~2점 차이로 등급이 갈리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ESG의 중요성이 국내외로 확산되는 상황이라 증권사 선정 과정에서 ESG 평가 배점을 자연스럽게 늘렸다”며 “장기 수익을 추구하는 국민연금 입장에서 (증권사 선정 평가에 ESG를)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중소 증권사 비용·인력 부담 호소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에 중소 증권사들은 곤혹스러워하는 눈치다. ESG 추진 체계나 보고서 발간 이력이 없는 경우 평가 대응을 위한 예산 마련과 인력 충원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개정된 평가 항목 내 ESG 관련 보고서 발간 건수는 중소 증권사들이 부담을 갖는 주요인이다.

현재 ESG 보고서를 발간한 곳은 대부분 대형 증권사다. 지난해 기준 ESG 보고서 및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한 증권사는 삼성증권, NH투자증권, 하나증권, KB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으로 중소 증권사 중에서는 교보증권, 한화투자증권이 발간했다. 유안타증권, 하이투자증권 등은 아직 ESG 보고서를 발간한 이력이 없다.

첫 ESG 보고서를 발간하려는 중소 증권사에 큰 걱정거리는 비용이다. ESG업계에 따르면, ESG 보고서 발간에는 1억~3억원의 비용이 든다. 첫 ESG 보고서를 만드는 데에는 ESG 전략 수립, 데이터 수집 프로세스 구축 등 보고서 발간 외에도 선행 작업이 필요한 만큼 더 많은 비용이 든다.

다수 중소 증권사가 올해 1분기 실적이 전분기 대비 개선됐지만, 여전히 차액 결제 거래(CFD) 미수채권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채권 등 실적에 영향을 미치는 리스크가 남아 있는 상황이라 ESG 점수만을 잘 받기 위한 투자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큰손 국민연금 놓칠 수 없어

비용 부담에도 중소 증권사 입장에서는 ESG 보고서 발간과 경영 체계 구축에 나설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국민연금이 내년 상반기부터 국내 주식 거래 증권사를 줄이겠다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내년 상반기부터 국내 주식거래 증권사 수를 36개 사에서 26개 사로 축소한다. 모집 증권사 수가 줄어들면 수수료 수익이 일부 증권사에 편중될 것이므로 중소 증권사는 국민연금의 선택을 받기 위해 더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다.

중소 증권사 관계자는 “대형 증권사에 비해 중소 증권사의 경우 건물을 임차해 운영하는 등 ESG 활동에 제약 요건이 많아 대응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ESG라는 명목으로 국민연금이 중소 증권사의 참여 기회를 막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토로했다.

다른 중소 증권사 관계자는 “ESG 보고서 발간을 준비 중이지만, 전담 인력과 비용이 들어 부담이 크다”며 “국민연금이 거래 증권사 선정 시 증권사 규모에 따라 평가 기준을 달리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박민석 데일리임팩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