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동굴 수도원'에 29일까지 퇴거령…최후통첩 디데이 '충돌' 우려
키이우 관구장 "젤렌스키에 '퇴거 철회' 요청 편지…폭력 안돼"
'친러 사제' 퇴거 시한 도래에…긴장 감도는 키이우 영적 심장부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러시아와 연계됐다는 의심을 받아온 우크라이나 내 정교회 성직자들과 수도사들의 근거지인 키이우의 페체르스크 수도원(동굴 수도원)에 내려진 퇴거령시한이 29일 만료된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최후통첩일이 다가오면서 현장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올렉산드르 트카첸코 우크라이나 문화부 장관은 지난 10일 러시아와 연계된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수도원의 일부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온 임대 계약의 종료를 발표하면서, 29일까지 이곳에 기거하는 성직자와 수도사, 신학자 약 500명에게 수도원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11세기로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이곳은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주요 근거지로, 수도원의 상당 부분을 우크라이나 정교회(Ukrainian Orthodox Church: UOC)가 사용해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한 러시아 정교회 모스크바 총대주교구 산하에 있던 UOC는 작년 5월 "전쟁은 '살인하지 말라'는 신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비난하며 독립을 선언했으나, 우크라이나 정부는 UOC가 여전히 러시아와 협력하면서 러시아 보안기관의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더타임스는 날이 밝으면서 수도원의 한편에서는 은발이 성성한 수사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신자들, 당국의 퇴거 명령에 저항하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국에서 모인 젊은 사제들이 모여들 것이라고 전했다.

'친러 사제' 퇴거 시한 도래에…긴장 감도는 키이우 영적 심장부
다른 한편에서는 경찰과 우크라이나 문화부 관리들, 이들의 퇴거를 촉구하는 시민들이 도열해 기싸움을 펼칠 것으로 전망했다.

우크라이나 문화부 당국자들은 소개령이 내려진 이후 수도원 밖에 상주하면서 옮겨지는 집기들과 물건들에 문화재가 섞여 반출되지 않는지를 감시해 왔다.

동굴 수도원의 일부 사제들이 정부의 퇴거령에 응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함에 따라 양측의 물리적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메온(36)이라는 이름의 수도사는 "강제로 끌려나가지 않는 이상 떠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말해 수도원에 계속 머물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막상 경찰이 도착해 요지부동의 수도사들과 마주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며 "최선의 결과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신자들과 함께 이날 수도원을 찾은 정교회 신자 올가 블라디미로우나(62) 씨는 "내 대자 역시 전선에서 우크라이나 편에서 싸우고 있다"며 자신의 평생 신앙의 터전이던 UOC에 대한 헌신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돼선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러 사제' 퇴거 시한 도래에…긴장 감도는 키이우 영적 심장부
UOC 소속인 키이우 관구장 오누프리(78) 대주교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이번 퇴거령을 철회해달라는 서한을 보냈지만, 아직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더타임스에 밝혔다.

그는 수도원 관계자들에게 저항할지 굴복할지에 대해 어떤 지침도 내리지 않았다면서 "각자 스스로의 결정을 할 것이다.

하지만, 폭력이 결부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동굴 수도원의 고위 수사들이 러시아에서 지원한 자금으로 호화 생활을 한다는 세간의 의혹 역시 사실이 아니라면서 "부패한 사례가 있다면 이를 지지하지 않으며, 중단되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내 정교회는 지난 2019년 이후 모스크바 총대주교구 산하의 UOC와 키이우 총대주교구 산하의 우크라이나 정교회(Orthodox Church of Ukraine: OCU)로 분열된 상황이다.

2014년 우크라이나에 탈러시아·친서방 정권이 들어선 뒤 종교적으로도 러시아에서 독립하려 한 OCU 등의 친우크라이나 성향 정교회들이 모스크바 총대주교구 관할에서 벗어나면서 서로 반목하는 2개 정교회로 갈라졌다.

'친러 사제' 퇴거 시한 도래에…긴장 감도는 키이우 영적 심장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