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칼럼] 진실을 말하면 고통주는 사회
혼탁했던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살린 것은 북에서 온 태영호 의원이었다. 우파 정당의 덕목임에도 오랫동안 실종된 ‘품격’이라는 필수 가치의 회생을 위한 작은 불씨를 그가 던졌다.

“역사적 사실도 부정하고 오직 자기주장만을 절대화해 ‘극우 색깔론’으로 악마화하는 것은 진실에 대한 지성적 태도가 아니다.” 자신이 제기한 ‘김일성 4·3 배후론’에 융단폭격이 가해지자 태 의원이 내놓은 반격이다. 날 선 지성과 품격이 감지된다.

“역사적 사실 앞에서 후퇴란 있을 수 없다”며 거대 야당과의 정면대결도 선언했다. 조금만 시끄러워져도 바싹 엎드려 눈치 보기에 급급한 ‘웰빙 정당’ 특유의 비겁함은 한 톨도 없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의힘에서도 손을 건네는 동지가 전무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북에서 그런 교육받은 건 알겠는데 이제 그 물 빼야죠”라며 비아냥만 보탰다.

최고위원이 됐지만 고난은 진행형이다. 국회 윤리위에서 ‘299 대 1’의 힘든 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래도 너무 외로워할 필요는 없다. ‘진실’이 일당백의 든든한 지원군이기 때문이다.

제주 4·3은 1948년 5·10 총선과 건국을 저지하려는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의 무장폭동이다. 진압 과정에서 대규모 양민 희생이 동반됐다. 처참한 비극의 가장 큰 책임도 신생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선전포고까지 감행한 남로당 반란세력에 돌아가야 마땅하다. 태 의원 주장대로 ‘평양 지령설’을 뒷받침하는 사료도 많다. ‘총선거 반대 인민항쟁 개시’ ‘폭동으로 인민공화국 수립’ 같은 지령문이 다수 확인됐다.

‘김일성 지령 없는 제주도당 단독 행동’이라는 주장은 2003년 나온 ‘4·3사건 진상보고서’에 근거한다. 하지만 박원순 등 좌파가 주도한 이 보고서는 평양 지령설에 반하는 증언만 취사선택한 혐의가 짙다. ‘개입’ 팩트와 정황은 무시하거나 자의적 판단으로 기각했다. 2026년까지 2조원 가까운 보상금이 풀리는 제주 현지에서조차 ‘4·3 재정립’ 시민운동이 등장한 이유다.

‘태영호 집단 린치’는 진실이 고사 중인 한국 담론시장의 후진성과 기형성의 징표다. 사상·표현의 자유를 수호해야 할 언론 행태가 특히 민망하다. 태 의원은 “진상보고서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KBS SBS MBC YTN JTBC 등은 ‘보고서로 검증해 보니 허위’라며 이상한 팩트체크를 내놨다.

태 의원이 지적한 ‘진실에 대한 반지성적 태도’는 우리의 고질병이기도 하다. 징용 배상을 둘러싼 최근 혼란도 진실 경시의 후폭풍에 다름 아니다. 한·일 최고법원과 국제사법기구의 판례가 혼란스럽고, 한국 사법부 내 판결도 엇갈린다는 분명한 사실을 많은 이가 외면했다. 그러고는 ‘건국하는 심정으로 썼다’던 특정 재판부의 판결만을 바이블처럼 절대화했다.

사실을 회피한 문재인 정부의 ‘죽창가 정치’는 정당성과 국격을 추락시켰다. 피해국이 가해국에 쩔쩔매는 굴욕외교가 펼쳐진 배경이다. 문 대통령은 친서를 지참한 총리와 국정원장까지 보내 한·일 정상회담을 간청했다. 외교부 장관도 일본 외무상이 3개월간 통화마저 거부하자 담당국장을 급파해 대화를 구걸하다시피 했다. 역사 배신으로 자초한 외교 참사였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에게 정신적 고통을 줬다.” 정경심 교수를 법정구속한 1심 재판부(임정엽)의 2년 전 명판결이다. 정권과 대깨문의 거센 압박을 이겨낸 한 법관의 노고는 한국을 업그레이드시켰다. 태영호의 고난도 집 나간 ‘자유’와 ‘민주주의’가 여의도로 복귀하는 과정이다. 진실을 직면하는 우리의 용기가 레벨업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