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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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이후 상승하기 시작한 원·달러 환율이 이달 들어 1300원이 넘어서자 ‘킹(king) 달러 시대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기업인과 달러 투자자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직후 원·달러 환율 움직임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된다. 2020년 3월 중순 1285원을 정점으로 2021년 1월 초 1082원까지 떨어지다가(1단계) 코로나 백신 보급과 함께 갑작스럽게 상승세로 돌아선 이후 작년 10월 초에는 1448원까지 급등(2단계)했다. 그 후 일부에서 2000원까지 오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지난 2월 초 1227원까지 급락(3단계)했다.


앞으로 원·달러 환율의 상승세가 지속된다면 이는 4단계에 해당된다. 미국 여건만 보면 작년 말 대비 달러 강세 요인이 더 강해졌다. 펀더멘털 면에서 미국 경제는 ‘노 랜딩’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견실하다. 통화정책 면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재차 불거지면서 방향 전환, 즉 피벗(pivot)에 대한 기대가 약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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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달러인덱스 구성 비중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유럽 경제는 겨울철 이상고온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폭락하면서 회복세가 뚜렷하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올해 첫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지만 유럽중앙은행(ECB)은 0.5%포인트 인상해 금리 차가 축소됐다.

대외적인 여건 면에서 달러 강세와 약세 요인이 혼재돼 있기 때문에 지난달 초 이후 원·달러 환율이 계속 상승하는 것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경상수지 균형 모델, 환율구조 모형 등으로 추정된 원·달러 환율의 적정선은 1230원 내외 수준이다.

작년 10월 초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락한 것은 환차익을 겨냥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됐기 때문이다. 반면 지난달 들어 원·달러 환율이 적정선 밑으로 떨어지자 외국인 자금이 이탈세로 돌아섰다. 올해 우리 경제 실상이 처음 확인됐던 지난달 초 펀더멘털이 개선돼 적정선이 더 떨어졌더라면 외국인 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될 수 있는 여건이었다.

비기축통화국의 외국인 자금 유출입을 결정하는 주요인은 금리 차보다 펀더멘털 개선 여부다. 성장률, 인플레이션율, 실업률, 경상수지 등 거시경제 4대 변수 중에서는 성장률과 경상수지를 중시한다. 외환위기를 경험한 낙인(stigma) 국가는 외환보유액이 최광의 개념의 캡티윤 모델로 추정한 적정수준 이상을 확보했는지도 주목한다.

한국 경제는 작년 4분기 성장률이 -0.4%로 역성장했다. 지난 1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2%로 작년 12월에 비해 오히려 올랐다. 외국인이 비기축통화국에 투자할 때 가장 경계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초기 국면이다. 무역적자도 올 들어 두 달 사이 180억달러를 넘어섰다.

일부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과 원·달러 환율의 상승세를 방지하기 위해 2월 금융통화회의에서 금리를 올렸어야 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미국 경제처럼 펀더멘털이 받쳐줘 금리를 올리면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국인 자금 이탈과 원·달러 환율의 상승세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경제처럼 펀더멘털이 안 좋은 여건에서 인플레이션과 외국인 자금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금리 인상→펀더멘털 악화→외국인 자금 이탈→원·달러 환율 상승’이라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확률이 높다. 우리는 비기축통화국이자 외환위기를 경험한 낙인국이다.

지금처럼 4대 거시경제 목표 간 상충 관계가 뚜렷한 상황에서는 인플레보다 성장률과 경상수지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경제 전망을 토대로 우리의 투자 매력도를 잃지 않기 위한 올해 성장률 최저선은 2%다. 올해 무역적자가 불가피하더라도 경상수지 흑자세는 유지해야 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왼쪽 사진)는 ‘인플레를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관리 가능하면 인플레와 같이 가야 한다’는 유연한 사고를 지닐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Fed(제롬 파월 의장·오른쪽 사진)가 기준금리 변경, 공개시장조작과 같은 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보다 인플레 타기팅선 상향 조정, 수익률 곡선 통제(YCC) 등 제3의 통화정책 수단을 검토하기 시작한 점을 참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