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1400원은 ‘빅 피겨(big figure)’로 불린다. 보기 드문 상징적 숫자라는 뜻에서다. 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이 숫자가 표시된 것은 2009년 3월 20일(종가 기준 1412원50전)이 마지막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였다. 1400원은 ‘심리적 저항선’으로도 여겨진다. 환율이 이 기준을 넘어서면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고, 경제 전반의 안정성이 흔들린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달 22일 미국 중앙은행(Fed)이 한 번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면서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졌다. 여전히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을 웃돌고 있다. 원화 약세가 계속되면 수입 물가 상승과 외국인 투자 자금 이탈로 금융 불안이 가속화된다. 정부와 기업은 물론 일반 투자자들이 환율에 관심을 둬야 하는 이유다.

1400원을 넘어선 원·달러 환율이 연말께 1500원 선까지 뚫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내년부터는 외환시장이 점차 안정세를 되찾으면서 하반기 평균 환율이 1280원까지 내려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그래픽=전희성 기자
그래픽=전희성 기자

연말까진 강세 이어질 듯

한국경제신문이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프라이빗뱅커(PB) 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올 연말 원·달러 환율 예상값이 평균 1441원으로 집계됐다. 상단은 1500원이다. 1990년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선 것은 외환위기 때인 1997~1998년과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인 2008~2009년 두 차례뿐이다.

환율 추가 상승에 무게가 쏠리는 이유는 미 Fed가 11월과 12월에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자이언트 스텝에 나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이렇게 되면 연 3~3.25%인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4.75%에 도달할 수 있다. 당초 예상치(연 4.5%)를 웃돈다.

이렇게 되면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가 환율을 밀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이 이달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면서 한국(연 3.0%)과 미국(연 3.0~3.25%) 간 기준금리 격차는 상단 기준으로 종전 0.75%포인트에서 0.25%포인트로 줄었다. 하지만 Fed가 남은 두 차례 회의에서 모두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고 한국은 다음달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상)’을 밟으면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는 최대 1.5%포인트까지 벌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자본이 국내에서 대거 유출되고, 원화 가치는 더 떨어질 수 있다.

무역수지 적자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한국의 적자 규모는 사상 처음 300억달러를 넘어섰다. 정성진 국민은행 강남PB센터 부센터장은 “수출로 들어오는 달러보다 수입으로 나가는 게 더 많다”며 “여기에 국내 산업을 이끄는 양대 산맥 반도체와 자동차 기업들이 위축되고 있어 환율이 높은 상태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점차 환율 안정되겠지만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 미 Fed의 금리 인상 주기가 끝나는 시점부터 달러 강세가 조금씩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했다. 설문에 참여한 PB 10명의 내년 상반기 평균 원·달러 환율 전망치는 1408원, 하반기는 1345원으로 조사됐다. 이은경 우리은행 TCE강남센터 부지점장은 “미국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완화되면 금리가 차츰 내려갈 것”이라며 “2000년 이후 원·달러 환율이 1300원 이상이었던 날이 6%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년 하반기엔 1280원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고 기대했다.

무역적자 개선, 한국의 양호한 대외 신용 등이 원·달러 환율 안정세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특히 한국의 안정적인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수준과 높은 국가 신용등급은 외국인 투자의 안정성을 확보해 환율 흐름에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외국인 국채 투자 비과세 시행을 내년 1월에서 이달로 앞당긴 것도 환율 안정에 기여할 공산이 크다. 외환시장에 직접적으로 달러가 유입되는 데다 국채 금리 하향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예의 주시해야 할 변수도 적지 않다. 영국발(發)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파운드화 약세,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 등 아시아 통화 약세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발 경기 둔화 우려와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 등에 따른 위안화 약세 현상이 원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인성 신한은행 PWM잠실센터 PB팀장은 “금리 인상이 끝나도 경기침체 우려가 부각돼 안전 자산인 달러 수요가 높아지면 달러 강세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며 “내년에 물가가 잡힌 이후에도 경기침체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폭증할 경우 달러가 다시 강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했다.

박상용/이소현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