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업체들이 ‘탈탄소’ 이슈를 앞세워 영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인한 경영난과 탄소 절감 설비 투자 증가에 따른 경영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수억파운드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제철소를 폐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16일(현지시간) 영국 경제전문매체인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현지 철강사인 브리티시스틸의 소유주인 중국 징예그룹은 영국 정부에 5억파운드(약 8100억원) 규모의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브리티시스틸은 철강 생산량 기준 영국 2위 회사다. 2020년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지자 징예그룹이 5000만파운드(약 810억원)가량을 들여 인수했다. 징예그룹 괸계자는 “영국 내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매일 약 100만파운드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를 운영하며 탄소 저감을 추진하려면 4억~5억파운드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탄소배출권 구매 비용만 따져도 1억파운드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에 맞춰 기업들이 탄소배출권을 구매하도록 하고 있다. 2050년 이내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브리티시스틸은 최근 2주간 제이콥 리스모스 영국 산업에너지부 장관을 만나 정부 지원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웨일스 포트탤벗에서 제철소를 운영 중인 인도 타타그룹 역시 영국 정부에 보조금 15억파운드(약 2조4300억원)를 요구하고 있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기존 용광로 2개를 폐쇄하고 전기아크로 2개를 건설하는 데 들어갈 비용 30억파운드 중 절반을 정부가 부담하라는 주장이다. 지난 7월 나타라잔 찬드라세카란 타타그룹 회장은 “1년 안에 영국 정부가 합의에 도달하지 않으면 제철소 폐쇄를 검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자문기관인 기후변화위원회도 “제철산업에서 2035년 이내에 사실상 탄소 배출량이 0에 가까워져야 한다”며 정부의 신속한 행동을 주문했다. 철강산업은 영국 산업 온실가스 배출량의 11%를 차지한다. 보조금 지급을 요구한 두 철강사는 영국 내 철강 생산량의 80%를 공급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