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항공 강국'다운 외교전략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8회 연속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이사국에 선출됐다. 지난 4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41차 ICAO 총회에서 이룬 값진 성과다. 그러나 뒷맛은 개운치 않다. 아랍에미리트(UAE, 161표), 카타르(160표), 에티오피아(154표), 대한민국(151표), 가나(150표), 자메이카(149표) 등 14개국이 뽑힌 후진국 그룹 파트3에서 득표수로 네 번째다.

ICAO는 193개국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유엔 최대의 산하 기구다. 연중 위원회가 열리는 이곳엔 각국 대표단이 상주한다. 36개 이사국은 총회에서 결정된 정책을 집행·감독하고 국제기준을 만들며, 각종 분쟁의 중재와 조정 등 입법·사법·행정에 권한을 행사한다. 항공시장의 질서를 잡는 게 이들이다. 하늘의 경계를 허문 드론과 도심항공교통(UAM)을 탄생시킨 기술의 진화만큼이나 수많은 규제가 바뀌는 요즘 이사국에 끼지 못하면 시장 경쟁에서 불리해진다.

2001년 뒤늦게 이사국이 된 우리나라는 제자리걸음이다. 주요 7개국(G7) 중심의 ‘메이저 그룹’인 파트1도 아니고, 국제적 공헌 그룹인 파트2의 12개국도 아닌 ‘마이너 리그’에 속해 있다. 코로나19에도 화물시장을 주도하며 운송 실적을 세계 5위까지 이끈 대한항공, 세계 정상급 브랜드인 인천국제공항, 서비스 평가에서 늘 상위권인 항공사들을 보유한 ‘항공 강국’이 유독 ICAO에선 왜 작아지는 걸까.

민간 항공의 역사에 답이 있다. ICAO의 거버넌스 때문이다. 세계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미국의 제안으로 52개국이 시카고에 모였다. 전쟁 중이긴 하지만 민간의 하늘길만은 보장하자는 합의로 1947년 이 국제기구가 탄생했다. 그때의 서명국들이 지금의 지배구조를 형성했다. 당시 주권이 없던 한국은 1952년 가입했지만, 창립 회원들의 기득권이 이사국 선출 때마다 담합으로 작용한다. 1국 1표의 선거전에선 신흥 강국이 비집고 드는 상황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지역그룹마다 표를 모으면 어느 나라도 탈락시킬 수 있는 이 역학 구조에선 파트3에 남는 것도 그래서 만만치 않다. 이번 총회 기간 내내 국토교통부 장관과 차관이 현장에서 득표전을 펼친 이유다.

세계 10위권 항공 선진국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지위를 높일 수 있을까. 3년마다 열리는 총회에서 그룹별로 변하는 표심을 읽고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선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하늘길을 막은 러시아의 파트1 탈락으로, 그들 지지그룹 일부가 우리에게 등을 돌렸다. 지난번에 실패했던 카타르가 1위로 진입함에 따라 다음 선거에선 전략적 동맹으로 아랍국가들의 견제까지 더해진다. 유럽이나 아시아보다는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결속이 단단하다. 표적이 분명한 전략적 접근이 그래서 필요하다. 메이저 회원보다는 54개 회원국을 둔 아프리카와 22개 회원국을 가진 중남미 그룹의 표심을 얻는 전략이 더 효과적이란 얘기다.

환심을 사려면 상대의 니즈부터 파악해야 한다. 개발도상국이 부러워하는 것은 한국의 탁월한 공항 운영과 항공사 경영 노하우, 서비스 경쟁력과 안전 작동 시스템이다. 그 목마름을 채우는 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개발원조 사업 목적이고 국제사회에선 덕목이다. 막 작동하기 시작한 국제협력단(KOICA)의 항공전문가 양성을 대폭 확대하자. 인적 인프라 구축은 ICAO 이사국 상향을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업계의 시장 진출도 촉진하는 가성비 높은 사업이다. 앞서가는 업계를 뒷받침할 외교적 노력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