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 NOW
‘원전·가스도 친환경’…택소노미 확정한 EU
유럽의회가 원전과 천연가스를 지속 가능한 택소노미(녹색 분류체계)에 포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원전과 천연가스가 들어간 택소노미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원전과 천연가스가 친환경 산업으로 규정돼 유럽 각국이 활발하게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유럽의회는 지난 7월 6일 친환경 투자 기준인 택소노미에 원전과 천연가스를 포함하는 방안을 투표에 부친 결과 328명 찬성으로 가결했다. 택소노미는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경제활동을 분류한 목록이다. 친환경 기술과 산업에 더 많은 자금이 투입되도록 하는 물길 역할을 한다. 유럽에서는 원전을 친환경 산업으로 인정할지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전력의 약 70%를 원전에서 얻는 프랑스와 핀란드 등은 탄소배출이 없고 안정적 전력 생산이 가능한 원전을 지지한다. 독일과 덴마크 등은 폐기물 처리 문제 등을 이유로 반대한다.

과도기 에너지로 원전·가스 택소노미 포함

EU는 2020년 6월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산업 분야를 분류·정리하는 체계인 택소노미를 처음 발표했다. 첫 발표 당시 원전과 천연가스는 택소노미에 포함되지 않아 이를 두고 논쟁이 이어졌다. 천연가스 발전 시 메탄이 배출되는데, 메탄의 온실화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최대 80배에 이른다. 원전에도 방사성폐기물 문제가 있어 택소노미에 포함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하지만 환경에 더 악영향을 미치는 연료인 석탄 사용을 줄이기 위해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EU는 지난해 12월 택소노미 초안에 원전과 천연가스를 포함한 데 이어 지난 2월 이 초안을 확정했다. 완전하게 재생 가능한 에너지가 아니더라도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과도기적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댔다. 당시만 해도 일부 국가의 반발을 제외하곤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이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에 에너지 위기가 닥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택소노미에 천연가스를 포함하면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이 이어진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6월 15일 유럽의회 경제통화위원회와 환경보건식품안전위원회는 합동 회의를 열어 원전과 천연가스를 택소노미에 포함해선 안 된다는 결의안을 찬성 76표, 반대 62표, 기권 4표로 채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EU는 결국 원전과 천연가스를 택소노미에 포함하는 최종안을 채택했다.

네덜란드 출신 폴 탕 EU 의원은 “택소노미는 미래를 위한 지침으로 지속 가능해야 한다”며 “택소노미에 가스를 포함하는 것은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만 높일 뿐”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환경 전문 변호사 스비트라나 로만코도 “천연가스의 택소노미 포함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최고 선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덴마크 출신 페르닐 바이스 의원은 “원전과 천연가스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EU는 석탄과 석유에 묶이게 된다.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은 탈(脫)원전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말 원전을 빼고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액화천연가스(LNG)를 넣은 K-택소노미를 발표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원전을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환경부는 4월부터 원전업계, 전문가들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수정안을 준비 중이다. 오는 8월 K-택소노미 수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도 K-택소노미에 원전 포함 추진

국내 경제계는 EU 발표 이후 즉각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EU 집행위원회의 최종안은 독일을 비롯한 일부 회원국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탄소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선 원자력과 천연가스의 활용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과 중국에 이어 EU도 원전을 탄소중립의 핵심 수단으로 삼는데 한국만 거꾸로 가는 셈”이라며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킬 것을 요청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 원전의 세계 수출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산업부는 “EU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원전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고 있다”며 “체코, 폴란드 등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인 EU 국가들의 자금 조달이 원활해지는 등 원전 사업 추진에 우호적 환경이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정부는 이 같은 흐름에 맞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정상회의에서 원자력 협력과 관련해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국가별 맞춤형 수주 패키지를 마련하는 한편, 원전 생태계 복원에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체코, 폴란드, 네덜란드, 영국 등 정상을 만나 ‘원전 세일즈’를 했다. 이에 따라 콰직 쿠와탱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BEIS) 장관과 밀로시 비스트르칠 체코 상원의장이 이끄는 경제대표단이 8월 방한해 원전 협력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산업부는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원전 수출을 위한 산업 패키지 협력 방안과 원전 수출 전략 등을 총괄 조율하는 민관 합동 ‘원전수출전략추진단’을 이달부터 본격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또 2025년까지 1조원 이상의 일감을 원전 생태계에 조기 공급하고, 올해 안에 6700억원의 기술 투자와 38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추진한다.

전설리 한국경제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