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민연금 개혁, 지배구조부터 수술하자
올해 들어 우크라이나 사태와 세계적 공급망 위기, 주요국의 금리 인상 등 여러 악재로 전 세계 주식시장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 또한 타격을 받아 올해 3월까지 2.7%의 손실(약 25조원)을 기록했다. 이 금액은 10개월 동안 약 592만 명의 연금 수급자에게 지급할 수 있는 규모에 해당하며, 5월까지의 손실은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노후에 국민연금 수령 여부가 불투명한 젊은 세대에 위협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국민연금의 수익률 제고와 기금 확충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다.

국민연금의 수익률 제고를 위해서는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더불어 전문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이 두 가지 기본적인 사실에도 충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미국의 국부펀드·연기금 분석기관인 글로벌SWF는 홈페이지에서 국민연금을 주식·채권 외 투자 난도가 높은 대체 자산의 투자 비중이 매우 낮은 보수적인 투자자이며, 조직이 매우 ‘정치적’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최근 본사를 수도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전하며 많은 전문 투자인력을 잃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보수적인 투자 성향은 둘째치더라도 조직이 매우 정치적이라는 부분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현재 국민연금 운용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기금운용위원회에는 정부 인사가 다수 포함돼 있다. 또한 각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사들로 꾸려져 있어 기금운용 정책 목표 1순위로 수익률 제고에 초점이 맞춰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해외 상황은 어떨까. 네덜란드 ABP의 경우 민간으로 구성된 독립 자회사인 APG를 설립해 기금을 운용하며, 의결권 행사까지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하고 있다. 캐나다(CPP), 노르웨이(GPFG), 일본(GPIF) 등도 모두 별도 기구를 설립하거나 외부 운용사에 위탁해 기금 운용과 의결권 행사를 전담하도록 하고 있다. 기금 운용을 전문가에게 맡겨 정치적 이해관계의 개입을 방지하고, 수익률 제고에 집중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반면 국민연금은 해외 연기금과는 반대로 정치적 독립성이나 전문성과는 더욱 동떨어진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수탁자 의무 이행이라는 명분으로 기업에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결정 권한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에 부여하는 지침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그 부분이다. 수책위는 국민연금이 가진 의결권을 행사하는 기금운용본부의 자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투자전문가도 아니며 결정에 아무런 법적 책임이 없는 외부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더군다나 ‘지역가입자’ ‘근로자’ ‘사용자’ 단체에서 추천된 인사여서 각 단체의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표소송에 휘말린 기업은 결과를 불문하고 이미지에 타격을 받게 되고, 자연스레 주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독립성이 낮고, 책임 소재도 불분명한 기구에 그 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수익률 제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윤석열 정부는 연금개혁을 국정 과제로 제시했다. 총인구 감소 시대로 돌입한 한국은 연금개혁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국민연금의 주인인 국민에게 책임을 미뤄 ‘더 내고 덜 받는’ 개선 방향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정답이 될 수 없다. 기금운용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정치적 입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근본적인 지배구조부터 개선해야 국민연금의 지속가능한 개혁이 가능할 것이다.